예드린 아리우스 2

아르가디움에서 서쪽 방향으로 3시간을 걸어왔다. 떠나기 전 고모가 땅을 짚을 수 있는 이상한 문장이 생긴 기다란 지팡이를 주지 않았더라면 이 삭막한 곳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햇빛은 맨 꼭대기 위에 걸려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밝은 빛을 내뿜으면서 강렬한 뜨거움을 예드린에게 선사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앞으로 쭉 내려와 콧등 위에 앉았다.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피부가 햇빛으로 인해 새카맣게 탈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예드린 앞에 한줄기 빛이 내려졌다. 저 멀리에 있는 오아시스가 보였다.

서쪽 지방은 긴 전쟁이 끊이지 않아 오로지 황무지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아시스가 찬란하게 빛이 났고, 그 옆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 큰 그늘이 졌다. 체력이 바닥인 예드린은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쭉 짜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아시스 앞에 다 달았을 때, 예드린은 아무런 주저 없이 그 오아시스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불타오르던 목구멍이 물로 인해 축, 갈아 앉았고 그늘진 곳에서 쉬자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햇빛을 피할 곳이 있어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이 느낌. 왠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예드린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노래구절을 중얼중얼 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자는 뭐하는 자지? 처음 보는 옷이군.”

날카로운 창을 든 병사가 예드린의 낡은 망토를 발로 꾹꾹 밟으며 옆에 서 있는 다른 병사에게 물었다. 그 병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런 해괴한 의상은 처음보군.” 이라고 대답했다.

예드린의 망토가 어떤 것인지, 지팡이는 뭐에 쓰는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옷과 외모로 보아 수상한 자가 확실했다. 두 병사는 포승줄을 꺼내 예드린의 손목과 발목을 따로따로 묶고는 깨어나지 않은 그를 마차에 태워 넣었다.

중요한 물건을 옮기는 데 쓰이는 마차인지 사방이 두꺼운 나무로 단단히 막혀 철통보안이 다름없었다. 예드린이 빠져나가지 않게 문고리를 걸고서 문의 손잡이를 세게 잡아 당겨도 끄떡없었다. 두 병사는 안심한 듯 제자리로 돌아가 각자 말 위에 타고 줄을 내리쳤다. 말을 천천히 움직였고 마차도 천천히 따라 움직였다.

으…, 예드린이 신음을 내뱉었다. 눈은 떴지만 뜨지 않은 것처럼 주위가 새카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예드린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손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이 상황을 눈치 챈 것이다.

지금 두 손은 등 뒤로 묶인 상태였고, 발도 밧줄로 꽁꽁 묶인 상태였다. 저를 납치하는 사람들이 입은 막지 않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예드린은 눈을 감고서 오로지 귀에만 의존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모든 신경을 두 귀에 보냈다.

졸졸졸, 강가 근처에 온 듯 했다.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다음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가디움이 아닌 다른 나라의 백성인 듯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소리들이 들리지 않아 초조했고 불길했다.

고모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예드린은 두려움에 시달렸다. 안 돼. 그럴 수 없어! 예드린은 재빠르게 눈을 굴렸다. 이 마차 안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줄을 어떻게든 끊어보려는 생각이었다.

두리번거리던 도중 상자 안에 빼곡하게 들어있는 병들이 보였다. 보라빛 액체로 보아 값비싼 포도주였다.

‘이것들을 전부 망가뜨리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나가겠지?’

순간 망설였지만 어디론가로 끌려가서 죽는 것 보단 차라리 나중에 돈으로 갚는 게 낫다고 생각을 바꾼 예드린은 뒤로 묶인 손으로 상자 안에 들어있는 포도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이것을 최대한 눈치 채지 못하게 깨뜨려 그 유리 파편을 이용해 줄을 끊으려 했지만 이 작은 공간과, 조용한 바깥 상황을 보면 들킬 것이 분명했다. 손에 땀이 차올랐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두려움이 역력했다.

하지만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술병을 잡아 단단한 나무 상자 모서리에 힘껏 내리쳤다. 한 번 내리치는 것으로는 깨지지 않았다. 세 번을 내리친 끝에야 팟, 소리가 나더니 후두둑, 포도주가 밑으로 새어나갔다. 함께 파편들이 밑으로 떨어졌다. 예드린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끼익-. 마차가 멈추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심장이 쪼그라들어 기껏 유리파편을 들었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드린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는 마차 밖에서 벌어지는 소리를 주위 깊게 들었다.

한 병사가 말에서 내려와 뚜벅뚜벅 걷고 있는 발소리가 들렸다. 예드린은 서둘러 빠져나갈 궁리를 해 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덜컥,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 밝은 빛이 들어왔다. 병사는 마차 안을 둘
러보고는 이상이 없단 것을 알고는 서둘러 문을 닫아 자물쇠를 채웠다.

“뭐야, 왜 그래?”
“아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깬 줄 알았지.”

병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마차가 출발했다.

예드린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문이 열리기 전에 그냥 다짜고짜 엎어졌는데 병사가 눈치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깨진 유리파편과 바닥에 흘려져 있는 포도주를 어두운 공간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또 다시 마차가 멈출 것 같은 불안감에 예드린은 누운 채로 팔의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쇠사슬이었다면 끊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지만 다행히 낡은 밧줄이었는지 몇번 긁자마자 쉽게 풀려버렸다. 발을 묶은 밧줄도 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차 문을 흔들어보았지만 밖에서 채운 자물쇠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드린은 어두운 바닥을 더듬거리며 자신의 지팡이를 찾았다. 문이 열리기 전까지 마차 안에 숨어있다가 들어오는 병사를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예드린은 마차 안에 흐트러져 있는 상자들을 위로 세워 마치 보호막처럼 자신을 감쌌다. 그리고 그 상태로 마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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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0-06 15:46 | 조회 : 2,08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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