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드린 아리우스 1

아르가디움을 이끄는 여왕폐하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소수민족이라 그리 크지 않은 영토지만 여왕폐하께서 오르신 후 전쟁도 없었고, 곡식도 잘 익어서 먹을 것 걱정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한 안정을 30년이나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모두 안절부절 못했다. 백성들도, 여왕폐하를 모시는 시종들도 모두 혼란에 빠졌다.

그러다가 동시에 문득 떠오른 것이 ‘망각의 눈물’이었다.

망각의 눈물은 너무 과다하게 복용하면 온 정신을 잃게 되어 여태까지 모든 기억을 잃게 되지만, 극소수를 복용하면 기억은 온전하게 남은 상태로 아픈 곳만 치유가 된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눈물이다.

그 전설은 400년 전에 아르가디움에게 전해졌다.

망각의 눈물에 대해 듣게 된 황제는 한 평민을 시켜 그 전설의 눈물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그 평민은 군소리 없이 마을을 떠났고, 2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평민이 아르가디움 땅을 밟았을 때,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라고 전해졌다.

그 평민을 상태를 본 후, 망각의 눈물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사람들은 믿었고, 그 눈물을 얻으면 부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평민들이 늘 찾아다녔다. 400년이 지났지만 그 평민이 망각의 눈물을 찾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아직까지도 전해지는 말이 하나 있다. 망각의 눈물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을 ‘전루공(傳淚工 : 눈물을 옮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귀족들은 한 곳에 모여 논의를 결정했다. 전루공을 모두 보내 망각의 눈물을 찾아오게 하려고 시킬 것인가, 아니면 오로지 한 사람만 시킬 것인가.

400여년 동안 망각의 눈물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가 희귀성이었다. 제일 처음 평민 혼자서 그 눈물을 찾으러 갔을 때와 여럿이서 그 눈물을 찾으러 갔을 때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비트롱 남작, 그대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비트롱 남작은 지위가 그리 높은 편이지는 않았지만 명석한 두뇌로 가끔 다른 귀족들은 물론 여왕폐하를 놀라게 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의 의견을 회담에서 빼놓을 수는 없었다.

비트롱 남작은 저의 턱 선을 매만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도 역시 어려운 결정인 듯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저으려 하자 그의 '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명만 보내도록 하죠.”

자신감 넘치는 비트롱 남작의 말에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단…….”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이어서 한 조건이 걸어져 왔다. 귀족들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며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책상을 두드리며 ‘그거 참, 좋은 생각이요.’ ‘역시 비트롱 남작일세.’ 모두 만족해하며 비트롱 남작에게 경의를 표했다.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언뜻 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귀족들은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서야 회담이 끝이났다.

귀족들의 회담은 하루가 지나서야 백성들에게 공표되었다. 전루공들에게 망각의 눈물을 찾아오라는 전언이었다. 망각의 눈물을 찾아와 여왕폐하의 병을 낫게 하면 3대가 배부르게 살게 해줄 것이라는 커다란 조건을 걸었다.

그 조건을 들은 전루공들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 뒤로 이어진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트롱 남작이 걸었던, 뒤에 붙여진 전언은.

“단, 찾으러 가는 전루공은 400년 전의 그의 후손으로 한정된다.”

이미 400년이나 지났다.

그 안에 일어났던 전쟁과 재해로 그 평민의 후손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에 선택되지 않은 전루공들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전언을 전하는 사람이 헛기침을 두 번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반발하던 전루공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비트롱 남작이 보낸 전언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400년 전의 평민의 후손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곧 전해주겠다고 한다. 전루공들은 어디 사는 대단한 놈인지 보자, 라며 인상을 가득 쓰며 한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자신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과 자신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다. 끝내 그의 입에서 후손의 이름이 나왔다.

“예드린 아리우스.”

그의 말을 들은 전루공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나같이 모두 놀라 눈은 커지고 입은 저절로 벌어진 상태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전루공들의 시선들은 모두 커다란 돌덩이에 기대서 잠을 자고 있는 소년에게 쏠렸다.

강렬한 눈빛들을 느낀 것인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입가에 흘린 침을 슥, 닦으며 잠에서 깼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해 몽롱한 그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에 있는 모든 전루공들의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단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전루공들이 끄덕였다. 하?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저를 가리켰다. 전루공들이 다시 끄덕였다. 소년의 비명은 평온한 아르가디움에 널리 퍼졌다.

예드린이 지나갈 때마다 전언을 들은 백성들은 힘내라고 격려를 퍼부어주셨다. 그들과 달린 다른 전루공들은 탐탁지 않은 듯 하였다. 예드린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이 돌아가셔 돌봐주신 고모와 고모부를 위해 무턱대고 전루공이 되었지만 체력도 약하고 끈기도 없어 쉽게 다치고, 포기하는 순간이 많았다.

장기간 여행을 하는 전루공들에겐 예드린이란 그저 짐덩어리에 불과했다. 고모와 고모부는 전루공을 그만두고 밭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예드린은 전루공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다.

그렇게 힘든 전루공을 왜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지금 와서야 알 것 같았다. 예드린 몸속에는 제 1대 전루공의 피가 섞여 있었다.

아무리 귀족들의 명령이었지만 고모는 그 전언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밤낮으로 빌고 빌었지만 그들은 한낱 평민에 불과했다. 무릎을 꿇은 고모의 어깨를 붙잡고 예드린은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미소를 활짝 지었다.

걱정 마세요. 어리기만 느껴졌던 그 소년을 고모는 와락, 끌어안았다. 꼭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며 다음 날 아침, 예드린은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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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0-03 21:42 | 조회 : 2,750 목록
작가의 말
nic38305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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