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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의 끝에, 결국 힘을 봉인당한 여왕은 대부분의 힘과 함께 시력도 청력도 잃은 채로 이젠 몸조차 천천히 굳어가고있었다.
작은 새는 여왕이 가장 아끼던 사역마였고 쿠데타당시 작은 새장안에 갇혀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여왕의 나머지 사역마들은 전부 죽어버렸다.

" 작은 아가, 내 남은 힘을 모두 너에게 줄 테니 세상에 흩어져버린 나의 조각을 가져다주지 않겠니. "

여왕이 말했다. 그녀의 앞에 놓인 새장속의 청회색 새는 그저 작은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 다녀오련, 나의 작은 새야. "

여왕의 몸이 빠른 속도로 굳어감과 동시에 작은 새는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새는 어느새 건장한 성인남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왕이 깨닿지 못한 사이, 이미 아기새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새는 굳어버린 여왕에게 키스를 하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나의 군주. "

새는 여왕의 힘이 봉인된 물건들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동쪽지역 영주의 손에 들어가있던 여왕의 목걸이를 되찾아와 그녀의 목에 걸자 굳었던 여왕의 몸이 다시금 움직였다.

" 고맙구나 아가. 하지만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단다. 남은 것이 있지 않니? "

" 아직 세가지가 남았다 들었습니다. "

" ... 미안하구나, 아가. 아직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단다. "

새는 북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 되찾은 것은 작은 귀걸이였다. 새는 그녀에게 귀걸이를 건네주었다. 귀걸이를 낀 여왕에게 새는 말했다.

" 나의 군주시여,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

" 그래, 그런 목소리가 되었구나. 어서 너의 모습을 보고싶단다 아가. "

새는 이번엔 서쪽으로 향했다. 이번엔 굳이 남쪽으로 갈 필요도 없었다. 남은 반지와 티아라는 모두 서쪽에 있었으니.
여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새는 그녀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봉인된 힘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 많이 약해져있었지만 여왕의 스러져가는 몸을 지탱하기엔 충분했다. 여왕은 말했다.

" 아가, 난 여전히 앞을 볼 수 없단다. 나의 티아라는 어디에 있니? "

새는 거짓말을 했다.

" 나의 군주시여, 당신의 티아라는 이미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부서진 채였습니다. "

여왕은 그가 거짓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왕은 새를 믿기로 했다. 거짓을 말해야 할 이유가 있었겠거니, 하고.
새는 여왕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군주입니다. 당신이 앞을 못 보는 대신, 내가 당신의 눈이 되어드리지요. "

" 나를 위해 그렇게 해주겠다니 고맙구나. 아가, 나는 이 방 안에만 있는 것에 많이 지쳤다. 나를 밖으로 데려가주지 않겠니? "

" 그것만은 안 됩니다, 군주시여. 바깥은 이젠 당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합니다. "

새는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속마음을 채 숨기지 못한 거짓말에 여왕은 새가 바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워주던 순간부터 어렴풋이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왕은 새의 손을 잡았다. 새의 왼손약지에도 반지가 끼워져있는 것이 느껴졌다.

" 새야,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단다. 너의 군주님은 청회색의 작은 새를 그 누구보다도 아끼거든. "

새는 본심을 들킨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여왕의 말이 너무나도 기뻤다.
새는 숨겨두었던 티아라를 여왕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마침내 여왕은 눈을 떴다. 맑은 푸른색의 눈이 그를 응시했다.

" 작고 귀여웠던 아기새가, 이젠 번듯한 어른이 되었구나. 더이상 아가라고 부를 수는 없겠고... 그래, 여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구나. 나의 작은 새, 아스테르. "

새는, 아스테르는 기뻐했다. 여왕은 자신의 사역마에게 이름을 붙여준 적이 없었다. 그녀의 사역마는 쿠데타 당일, 새장속에 있던 작은 아기새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버렸으니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이 붇여진 사역마가 되는 것이다.

" 여왕님. "

"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으련? 너의 군주님은 여왕의 직위를 박탈당했잖니. "

아스테르는 슬픈 이야기를 웃으며 하는 여왕이 안타까웠지만, 그녀를 위해 애써 웃어보였다.

" 클레멘스, 이미 눈치채버렸으니 어쩔 수 없겠군요. 당신을 쭉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동반자가 되고싶습니다. "

" 물론이란다, 아스테르야. 내가 모든것이 풍족했던 때에도 너를 제일 아꼈단다. 아가, 너만은 죽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사랑해. 군주가 아닌 여인으로서. "

" 나도 사랑해요, 클레멘스. "

부서져가는 황폐한 성에서, 여왕과 그의 작은 새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천천히 시간이 지나며 성이 허물어지듯 두사람의 생명도 스러져가겠지만,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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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0-28 19:49 | 조회 : 555 목록
작가의 말
라미니츠

쿠데타라고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알수없는 힘을 가지고있던 여왕에게 일어난 마녀사냥이라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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