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3승

“아니면······· 농담이야.”

이프는 피식 웃어 보이며 리온을 바라보았다.

“죽을 생각 따윈 조금도 없어. 그리고- 리치카님을 만나서 나눌 이야기들은, 생각할 시간 충분해 보이는 걸.”

정신을 놓은 리온 뒤에는 리즈가 서 있었다. 리즈는 마법으로 눈 결정 모양의 지팡이를 들어보였다. 그 싸늘한 표정에 어울리는 듯 차가운 날개 모양의 비녀,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리온의 어두운 빛이라 부를 수도 없는 어둠이 단숨이 사라졌다.

“·······무슨 커튼 걷듯이 정리해 버리다니······· 여태껏 고전한 ‘힘’의 체면이 아니게 됐네요. 뮬님. 우리 지금 목숨을 빚졌어요. 갚아줄 기회도 없을 빚이요. 빙설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 따윈 없을 테니까요.”
“..........”

저 위에 있는 리즈는, 남들과 같지 않은, 조금은 따듯한 눈으로 리온을 쳐다보았다. 자신보다는 어렸으나, 50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자신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활기찬 빛의 마녀, ‘레온’.

유일하게 자신에게 패배하지 않던 자. 그녀가 죽었을 땐 마음이 아픈 것을 느꼈다. 그녀와 닮은 리온을 알았을 때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녀의 의지를 이어 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저 아이는 어둠에 물들어져 더 이상 빛의 마녀가 아니었다.

“리온, 너는 더 이상 네가 아니구나. 더 이상 그 팔과 다리는 쓸 수 없겠지. 너는 누구지? 대답에 따라 너를 죽여야 할 수도 있다.”
“·······.”

리온은 아무말 하지 않고 텅 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즈가 그 말을 듣고 막으려 갔지만 이프는 안즈를 말렸다.

“자- 잠깐!! 안 돼!! 무슨 짓이야?! 죽는다고!!”
“리······리온이 죽어서는 안 돼······!!”

갑자기 비틀거리며 칼을 떨어트리니 주저 앉는다.

“내······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드레이스 라츠페리아······?”
“본인도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경까지 왔구나.”

리즈는 레온이 말한 것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는 그 마녀를 죽이는 것 뿐이었다.

“이제부터 죽이도록 하지.”
“·········.”

그러다 갑자기 이프가 안즈를 꽈악 잡고 뒤에 숨긴 뒤 리온 앞을 가로막았다.

“빙설님. 너무하십니다. 대륙의 가장 큰 어른 되시는 분이, 마녀를 죽이겠다니요. 침식을 저지한 공이 있을 뿐더러 이미 죽다 살아난 전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멀쩡히 유지하려고 하시던 분인데, 선처를 해 주십시오. 만약- 당신도 뮬님처럼 폭주하게 된 다면, 이제는 아무도 당신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빙설의 2대. 당신은·········.”

이프는 잠시 뜸을 들였다.

“각성한 마녀 두 명이서도 이길 수 없는 존재니까요. 마녀들에게 마석에 맹세한 ‘금기’가 생긴 이유가······· 바로 당신 때문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로이라스 레온 드레이스 라츠페리아. 빛의 6대가 사망 후에 이제 유일한 3차 각성자이신 리즈 아브라멜린 님.”

그 말을 한 후, 정말 조용했다. 이프의 목에서는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잘 못 건드린 것인가? 저렇게 무표정일 수 있나 싶었다.

“······뭐, 어쨌든. 빙설님께서 중간부터 오셨으니 이 상황의 전부를 모르실겁니다. 그녀가 이유 없이 마녀를 죽이려고 한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빛의 마녀님은 단지 상처가 폭발하신 것이에요.”
“······!”
“게다가 이 아이와 마녀님의 소중한 사람의 물건을 무덤에서 파온 사람을 면전에서 옹호하다니. 그것만 봐도 마녀님의 말을 들어주었던 사람은 없었다고 봐야겠죠.”

그러다가 잡혀있던 안즈가 고개를 돌려 이프에게 물었다.

“왜······ 리온을 감싸주는 거야?”
“이야기를 따르면 지금 빛은 혼자가 된 전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 ‘혼자’ 남겨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니까요. 절 기사로 만들어 주신 건 리치카님이세요.”
“·······!”

그리고는 이프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리치카님은 침식을 빠져나온 후의 행방이 묘연했고, 갑자기 계승하곤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그보다도 제가 힘들었던 건······· 저 이외의 세 명의 기사들이, 슬픔을 못 이기고 자결해 버린 일이었어요.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저만 홀로 남겨둔채.”
“······!”

분명 리온도 그런 경험을 겪었다. 처음엔 부모님이, 그 후에는 오빠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갔다.

“하아~ 그래도 잘 했다는 건 아닙니다?! 내가 힘들다고 다 때려부쉈으면 남아나는 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뭐, 뒤집어 엎는 게 제 취향인 건 맞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요?”

이프는 쫑알 거리며 안즈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사람은 원래 좀 힘들고 다 혼자고 그렇다구요. 유난 떨 거 없어요.”

그때,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

“········!! 그만 놔 줘.”
“왜요? 7대 바람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궁리만 하라고 가르쳤어요? 가만히 좀 있어요. 대련에서 세실이 빠져나가기만 했다는 설이 유력해지고 있어요. 지금?”

안즈는 겨우 이프의 팔을 풀어냈다. 그리고는 휙 몸을 돌렸다.

“잘 들어. 리치카와 세실의 대련 전적은 353:350. 세실이 무려 3승이 더 높아. 그러니까 세실도 나도, 미꾸라지 아니거든!”
“········!! 그렇다고 떨어지면 어쩌자는········ 미꾸라지 맞네 뭘!!”

이프는 떨어지는 안즈를 보며 소리쳤다. 안즈는 떨어지며 세실리아와 리온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안즈는, 세실리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안즈. 나보다 더 너의 마음에 새겨졌으면 하는 말이 있어. 때때로 삶은 쉽게 괴로움으로 어둡게 칠해진단다. 세상이, 모두가 날 미워하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을 닫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와 버리고 말지. 그 어두움은 그것이 아늑하다 느껴지도록 잠식해와. ‘나는 원래 이래’ 라고 생각하면 편해질 정도로. 난 네가 그 어둠에 지지 않기를 바라. 혼자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

안즈의 아래에 중력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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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31 15:56 | 조회 : 1,370 목록
작가의 말
백란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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