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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차전이 끝난 후, 제하는 하랑에게로 돌아왔다.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한 손으로 부여 잡고는 의자에 앉았다. 하랑은 헤헤, 웃으며 괜찮냐는 듯이 제하를 바라봤다.
" 너 아까 나 모른 척 했지? 어쭈? "
제하가 하랑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움켜 잡았다. 자연스럽게 양 볼이 잡힌 하랑이 벗어나려는 듯이 고개를 마구 저었지만 제하의 완력을 뿌리치기는 힘들었다.
" 으부붑!! "
" 얼굴에 살 봐. 포동포동 해. "
그 말이 하랑이 미간 사이를 좁혔다. 마치, 무슨 문제있냐는 표정이었다. 제하는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당돌한 꼬마. 그게 제하가 본 하랑이었다. 오메가라는 자격지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당돌한 꼬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한참을 하랑의 볼을 잡고 있던 제하는 하랑의 부름에 순간적으로 놀라서 손을 놓았다.
" ...푸하하!!!! "
" 무..뭐야.. 왜 웃어요! "
" 너..크큭, 너 그거 같애. 그거. "
하랑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제하를 바라봤다. 제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름이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는 말했다.
" 피카츄!!!!! "
큰 소리에 카페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둘에게로 향했다. '또 저사람이야.' 수근거리는 소리에 하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귀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하의 완력에 생긴 붉은 반점이 완전히 가려질 정도였다.
" 이제는 홍당무같네. "
하랑은 얼른 시원한 물컵을 자신의 볼에 댔다. 화끈, 화끈.
" 아, 맞다. 우리 왜 만난거였더라? "
그제서야 만남의 목적을 생각하려는 듯이 제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랑이... 뜬금없이 고백했고, 그리고.. 어쩌다보니 번호를 주고 받다가 만나기로.. 아. 모든 게 떠오른 제하가 고개를 반쯤 기울이고는 말했다.
" 미안. 나 약혼녀가 있어. "
" ...알고 있어요. "
알고 있어요라니...
제하는 하랑의 표정에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의 하랑. 그러나 시무룩해져서 내려가는 어깨축을 보던 제하는 이상한 마음이 샘솟았다. 미안하다? 가엾다? 그 이질적인 느낌에 머리만 긁적였다.
" ...아니, 잠시만 어떻게 알고 있어?! "
그러고보니 제하는 하랑을 처음봤다. 적어도 제하의 기억 속에서 하랑은 얼마 전 길거리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제하가 이미 약혼한 사실을 알고 있다니.. 자신의 스토커도 아니고.. 스토커? 스토커?!
놀란 제하가 덜컹거리며 일어나자 하랑이 한숨을 푹 쉬었다.
" 스토커 아니예요. "
...마음을 왜 읽는거야.
제하는 그래..?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토커가 아니라고는 말하지만... 이 세상 어느 스토커가 저는 스토커입니다!!하면서 따라다니나 싶어서 도끼눈을 뜨고 하랑을 바라봤다.
" 하아... 저, 신 다현 친구예요. "
그 말에 제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같은 재벌이라 어릴 적 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제하는 아, 그래? 하며 음료를 마셨다. 하랑은 정말 기억안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물어봤자 지금의 제하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현의 친구라는 말에서도 하랑이 누군지 기억났다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 조금 더 크면, 그 때는... '
익숙한 목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나는.. 당신만 보고 6년을 기다렸는데...
" 이봐, 야!! "
제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하랑을 그를 올려다봤다. 제하는 음... 하고는 전화기에서 무언가를 켜서 하랑의 앞으로 내밀었다. 짙은 붉은 색 입술에 서클렌즈라도 꼈는지, 푸른 눈, 그리고 노란 색 머리를 한 여자가 서 있었다.
" 내 약혼녀거든? ...이래도 내가 좋다는 거야? "
제하는 하랑이 자신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거짓말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을 보여줬다. 현실로 와닿으면 포기하지 않을까 싶어서 보여줬는데.. 하랑의 눈에서 굵은 눈방울들이 투두둑-,거리며 떨어졌다. 그 반응에 놀라서 당황한 사람은 제하였다. 갑자기 우는 하랑의 모습에 어쩔 줄 모르고 옆에 있던 티슈로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뻗었을 때..
울음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다.
" 네,..좋아요... 그래도 좋아요.. "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슬퍼서 자신의 마음까지 먹먹해지는 것만 같았다. 제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손을 뻗어서 하랑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티슈로 닦았다. 제하의 손길에 놀란 하랑이 움찔거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일단은 친구부터 시작하자. "
" 네? "
" 문자 정도는 답해줄게. 아, 전화도. "
하랑은 큰 눈을 꿈뻑꿈뻑 거렸다. 그럴 때마다 속눈썹에 달라붙어서 마저 내려가지 못한 눈물 방울들이 반짝 거렸다. 그게 이상하게 야릇해서, 침이 삼켜졌다. 그리고는 바로 죄 의식을 느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6살 나이 차이가 나는 하랑을 대상으로 그 무슨!! ....뭐, 조금은 귀여울지도... 베시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하랑을 보고서는 그 앞에 놓인 음료를 하랑에게 들이 밀었다.
" 애같이 울기는. 마셔-. "
하랑은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료를 받아들었다. 그 모습이 아찔하게 귀여웠다. 그러나 곧 바로 다시 자괴감이 들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데다가.. 처음보는 남자가 귀엽다니... 하랑이 기분 좋게 음료를 마실때, 제하는 큰 자괴감을 넘나들고 있었다.
***
" 하아.. 전화기 주세요. 번호 찍어드릴게요. "
" 진짜? 오오. "
하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점장의 눈치가 보여서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율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전화기를 건네 받았다. 율의 옷은 한결같이 정장이었다. 얼굴을 봤을 때는 그렇게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장 메이커를 보아 꽤나 잘 사는 집안의 아이 같았다.
" 몇 살이예요? 22? 24? 아, 참고로 저는 19살 이니까요. 아직 미성년자에요. "
" 나, 18살인데? "
하루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율을 올려다봤다. 율은 왜?하는 표정으로 하루를 내려다봤다. 자신보다..어린..어린..!! 미성년자!!!!!!!!!!
" ㅇ..왜..왜!! 학생이 정장을!!! "
" 그야, 주말에는 일을 도와주니까? 아, 그렇다고 데이트할 시간이 없는 건 아니야. "
" ...그..그치만, ..저..랑 자고 싶다고... "
미성년자가 겁없이 성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와서 네 하룻밤을 사고싶어.이런 대사를 한다고? 하루는 율의 나이가 거짓말일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루의 충격받은 반응에 율은 으음? 하고는 하루에게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학생증.
강 율, ㅇㅇ고등학교 2학년 3반.
" .... "
" 미성년자는 섹스하면 안돼? "
당돌한 말에 하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 안되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사람들 많은 장소에서 그렇게 대놓고 ..그런 말 안 하잖아.. 하루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율에게 전화기를 건냈다.
" 나, 연하는 관심없어.. "
" 그럼, '야'라고 부를게. "
" 그건 싫어!! "
버럭, 율은 그럼 어쩌라고?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다가 문득, ㅇㅇ 학교가 자신의 바로 옆 학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굉장한 부자 학교..
" 너... 하룻밤이면 돼? "
" 어? "
" ... 하룻밤이면 되냐고. "
하루의 표정에 율은 음...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답답해진 하루가 율의 넥타이를 잡아다가 자신 쪽으로 끌었다. (신장 차이 때문에 차마 멱살을 잡지는 못했다. )
" 카페에서 얌전히 기다려. 일 끝나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아니면, ...가던가. "
하루의 성질적인 말에 율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두근, 그 미소에 순간적으로 두근 거린 하루가 잡고 있던 넥타이를 스르륵 놓자, 율은 다시 하루의 손에 자신의 넥타이를 쥐어주면서 말했다.
" 기다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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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남자 강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