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형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06.-




하랑은 제하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제하는 바쁘게 움직이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났고 그 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모습 처음이라는 듯 하랑이 제하를 조심스레 쳐다봤다. 하랑이 자신에게 딱 맞는 양복을 입고 나왔을 때 제하의 양복 또한 바뀌어있었다. 회갈색의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양복으로.

일 할때의 제하가 섹시하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하랑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제하를 쳐다봤다. 오늘 하루 종일 심장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미친듯이 뛰어댔다. 그리고 그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고통이 찾아왔다.

어린아이가 다른 아이가 들고있는 곰인형을 보고 예쁘지만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무기력함과 같은.


" 이하랑. 어디보냐? 집중 안할래? "

" 아. 죄송. "

" 죄송? 죄소옹? 말이 짧다? "

" 죄송합니다. "


하랑은 뭐야.. 하고 눈을 가늘게 떠서 제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하는 이내 씩.하고 입꼬리를 올리더니 됐어. 하고는 자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 저기서 화이트와인 한 잔만 가지고 와줘. 너도 마실려면 마시던가. "

" ... 마치 형이 심부름 보낼때 먹고싶은 거 있으면 사오던가. 같은데요. "

" 형 있어? "

" 말이 그렇다는 거죠. "


쓸데없긴.

제하가 낮게 말하고는 빨리 가라는 듯이 하랑의 등을 밀었다. 하랑은 어쩔 수 없다며 툴툴대고는 웨이터들이 서 있는 곳으로 가서 고급진 화이트와인 한 잔과 자신은 사이다를 한 잔 타달라고 했다. 일순간 웨이터들이 당황해서 얼굴을 굳혔지만 이내 알겠다며 주방으로 향했다. (이런 파티에서 사이다를 시키는 사람은 없을거다.)


' 술은 싫어. 괜히 실수하기도 싫고. '


술을 마시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마셔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치만 이런 자리에서 술을 굳이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 여기요. 부사장님. "

" 아. 감사. "

" 어라? 제하가 원래 비서를 뒀던가? "

" 아. 사실은 저희 알바생이예요. 일도 잘하고 유능해서 비서로 둘까 생각 중이예요. "


뭐야! 나한테는 한 마디도 없었잖아!

하랑은 속으로 외쳤지만 웃음을 생글생글 유지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 처음뵙겠습니다. 이 하랑이라고 합니다. "

" 허허허. 얼마나 유능하면 우리 제하가 비서로 둘 생각을 할꼬! "

" 아.. 아닙니다. "

" 겸손은! 몇 살인가? 대학생? "

" 네. ㅇㅇ대 법대 3학년 입니다. "


하랑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하랑을 보고있던 어르신의 눈이 순간 커지셨다. 오호. 하고 감탄을 뱉으시고는 하랑의 어깨에 손을 올리셨다.


" 우리 제하를 잘 부탁하네. "

" 네..? "

" 선생님! 제가 얘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


제하가 불쑥 둘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선생님이라니? 하랑이 궁금하다는 듯이 제하를 쳐다봤고 제하의 스승인 어르신은 허허 웃으시고는 둘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셨다.


" 선생님이라뇨? "

" 아. 내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셨어. "

" 아하. "


하랑이 알겠다는 듯이, 신기하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아독존 박제하의 선생님! 뭔가 모르게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 것보다. 너는 왜 사이다야? "

" 네? 아... 제가 술마시면 누가 부사장님 봐드리나요. "


하랑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제하가 흐음. 하고 짧게 소리를 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 나보다 너가 훨씬 더 빨리 취할걸. "

" 네? "

" 나 왠만해서는 안 취하거든. "

" ...아... 네. 대단하시네요. "


감흥없다는 듯 말하자 제하가 얼굴을 찌뿌렸다. 그 순간까지도 하랑은 찌뿌려진 제하의 얼굴마저 섹시하다고 생각을 했고 순간 자신의 변태스러움(?) 에 창피해졌다.


" 너도 차암 얼굴값 못하네. "

" 그게 무슨... "

" 이왕 귀엽게 생겼으면 그걸 좀 이용해먹지. "


하랑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자 제하는 의기양양해져서 팔짱을 끼고 씨익 웃으며 하랑을 내려다봤다.


" 최대한 귀엽게. 형님, 까까사주세요. 해봐. "


....제가 7살난 애입니까?

하랑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자 제하는 어서하라는 듯이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 풉. 29살 먹도록 까까라니. 양심은 어디다 팔아먹었니? "

" ....뭐야. "


제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뒤를 쳐다봤다. 제하만한 키의 남자가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 잘 지냈니? "

" ...하하. 우리 이 사장님이 지금 나한테 잘 지냈니라고 물어본 거야? "

" 응. "


남자의 물음에 제하가 억지로 입꼬리만 올려서 말했다.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지랄. 양심은 어디다 팔아먹었어? "


제하가 올렸던 입꼬리를 한순간에 내리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랑은 제하의 뒤에서 멀뚱멀뚱 둘을 쳐다봤다. 그제서야 남자의 눈이 하랑에게로 향했다.


" 응? 새로운 비서야? 왠일이야? "

" .... "

" 그 년 이후로는 안 만들더니. "

" 그만해라. "


제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남자는 제하의 말을 싹둑 잘라먹고는 하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 반가워요. 박 제하 사촌 형이자 신현기업의 사장인 박 슬하라고 해요. "

" 아.. 저는 이 하랑이라고 합니다... "

" 이름이 ... 예쁘네요. "


하랑이 뻘쭘하게 손을 잡자 슬하가 갑작스레 손에 힘을 줬다. 체격상 슬하가 훨씬 컸기에 하랑은 속수무책으로 손이 쪼개지는 정도의 고통을 격었다. 얼굴이 찌뿌려지고 끝내 윽. 하고 낮은 신음을 내뱉고는 무릎을 땅에 박았다. 그람에도 슬하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꽉 쥐었다.


" 악. "


하랑의 눈에서 눈물과 신음소리가 나왔을 때 제하가 이상함을 느끼고 재빨리 슬하의 손목을 잡고 살짝 비틀었다.


" 이게. 뭐하는. 짓. 이야? "


제하가 강조하듯 끊어서 말했다.


" 네 옆에 있을려면 강해야 할 거 아냐? 근데.. 지금 보니까 그냥... 하룻강아지도 아니고 온실 속 고양이잖아? "


" 뭐 이 새끼야? "


제하의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슬하는 움찔거리는 제하의 주먹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더 이상 건들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났다.


" 미안해요. 하랑씨.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

" 으읏 "


하랑이 인상을 피려고 노력했다. 슬하는 그런 하랑의 노력이 신기한 듯이 슬금슬금 펴지는 하랑의 얼굴을 봤다.


" 괜...찮습니다. "


흐음. 슬하가 고개만 끄덕이고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제하는 눈에 불을 키고 그를 보다가 얼른 하랑에게로 왔다.


" 이 하랑. 괜찮아? 어디봐. "

" 괜찮.. 읏... "


제하가 하랑의 손목을 잡자 하랑의 얼굴이 다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제하는 하랑의 손을 살폈다.

얼마나 세게 잡았으면 하얀 하랑의 손목과 손등 위로 벌써부터 푸르스름한 멍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랑의 피부가 하얘서 올라오는 울긋불긋하고 푸르스름한 색깔이 더 눈에 띄었다. 제하의 눈이 일순간 크게 일렁이더니 서늘한 눈빛을 내보냈다.


" 개 새끼. 죽인다. "

" 아! 형!! "


하랑은 싸움이 난다면 자기 때문에 파티가 망칠 것이라 생각해서 다급하게 뒤를 도는 제하의 팔을 잡았다.


" 형. 나 괜찮으니까... 그.. "

" 씨발. 괜찮아? 얼마나 세개 잡았으면 그 찰나에 애 손모가지를 이따구로 만드냐고!! "


화가 난 제하가 큰 소리를 냈다. 주위의 시선이 모여지는 것을 느낀 하랑이 제하를 데리고 파티장을 나왔다. 씩씩거리는 제하를 본 하랑은 이상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걸 느꼈다.


" 형. 나 진짜 괜찮으니까... "

" 내가 안 괜찮아. "


제하가 씩씩거리던 표정을 풀고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하랑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그 손길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해서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제하의 옷 깃을 쥐고 그대로 품에 안겨 울 뻔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제하의 모습이 괜한 기대감을 불어 넣었다.


" 야. 손목 움직이는 데는 괜찮아? "

" ..응.. "

" 위로 움직여봐. 병원 안 가도 되는지. "


제하의 상냥한 목소리에 하랑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옷 깃을 쥐었다.


" ...형. "

" 어? 왜? "

" ..혀엉. "

" ...왜, 하랑아. "


한 없이 따뜻한 목소리. 살짝 떨리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듯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는 목소리.

... 이 것이 내 것이었으면...


" ...우리. 까까먹으러 가요. "






-







" 야. 다 골라담아! "

" 아싸. 여기서 저기까지!!! "

" 내가 오늘 쏜다. 치킨은? "

" 과자만! "


아까부터 제하의 한 쪽팔에 매달려 제하를 부려먹고 있는 하랑이 기분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는 듯이 제하는 계속 웃으며 하랑의 말을 들어줬다.


" 뭐 또 먹고 싶은거나 하고 싶은거 없어? "

" 음... 귀엽게 말하면 다 해줄거야? "

" 어! 하트 꼭 붙여라! "


제하의 말에 곰곰히 생각하던 하랑은 꿀꺽. 침을 삼키고는 애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 ...형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


제하의 표정이 순간 놀람과 당황함으로 굳어졌다가 이내 풀리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 푸하하!!! 아! 귀여워 귀여워. 합격. "

" 오예. 물리기 없기! "

" 알았어. 새꺄. 이런 건 언제 또 배웠대? "

" 선천적인 재능이라는거야. "


하랑의 당당함에 제하가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하고는 양손 가득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이 십만원이 넘게 나왔다.) 봉지를 들고는 하랑의 좌석문을 열어줬다.


" 아. 공주님같애. "

" 크큭. 사내놈이 공주는 무슨. "

" 말이 그렇다는 거지! "

" 우쮸쮸. 그랬어요~? "


제하가 짐을 내려놓고 팔을 들어 하랑의 머리를 쓰다듬자 하랑의 귀끝이 다시 빨개지며 애 취급하지 말라고 갈갈이 날뛰었다. 제하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다가 몸을 숙여 하랑의 안전벨트를 메어 줬다.

순간 확!하고 풍기는 제하만의 향수 냄새에 하랑은 두근거리는 소리가 혹시나 들릴까봐, 몸을 더 좌석으로 붙였다. 뒤로 물러나는 하랑의 움직임에 제하가 고개를 들어 하랑을 쳐다봤다.

아...섹시해!! 이 남자!! 너무 섹시하다고! 섹시해!!!!

온 몸으로 위험 신호를 내보내던 하랑의 코앞까지 제하의 얼굴이 다가왔다. 하랑은 침을 꼴깍하고 삼키고는 제하의 눈을 바라봤다. 더 다가오던 제하가 피식 웃고는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갔다.


' ...어라...? '


하랑은 아무 일도 없자, 허무함과 서운함에 살짝 입꼬리가 내려갔다. 제하는 자신의 안전벨트를 메고는 시동을 켰다.

경쾌한 출발소리가 들리고 한 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하랑이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거리자. 제하가 핸들에서 손을 잠시 떼고 순간적으로 하랑의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하랑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다시 앞을 본 제하가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하랑이 귀여운지 생글생글 웃었다.


' 어? 방금... 뭐야? 방금... 어라? '


하랑이 멍하게 제하를 쳐다보자 제하가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 다른 놈들한테 라면 먹고 간다고 하면 이 꼴보다 더 한 꼴난다? 조심해. "


위험해... 큰일이야. 돌이킬 수 없어. 끝이야. 안돼.

하랑의 온 몸이, 머리가, 그리고 심장이 말한다.


이 남자기 좋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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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8-01 17:24 | 조회 : 6,455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다음화...터져라!!!!!!!!!!!! 펑!!팡!!!! ..과연 라면을 먹고 가는 하랑이는 무사할까요? 므흣므흣 (음란마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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