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세렌과 만남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온다. 저 짜증나는 메르디스와 산만한 디오까지. 정말 나보고 관 짜고 누우라는 건지.

“아, 그러고 보니, 마스터랑 아리아 스승님은······.”
“내가 그 인간들에게 잘 맡겼어.”
“잘했어!”

나는 디오의 머리를 쓰담아 주었고 디오는 기분이 좋은 건지 웃었다. 다행이야. 루드 마스터랑 스승님은 무사히 살아서 만날 수 있을 거야. 분명.

“근데 진짜 다 기억 나? 내 이름 지어준 것도, 내가 바위에 끼어서 작게 만들어 준 것도 다 기억 나?”
“·······기억 안 나는데.”
“그럼 돌아오는 기억을 잃고 90일 동안 실종됐다가 아리아가 겨우 찾아서 데리고 온 건?”
“기억 안 나.”
“저도 기억 안 나네요.”

그리고 그건 지금 내가 다 기억을 못하잖아. 불가능 하겠지만 그건 디오가 아는 다른 나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는 일이야.

“절벽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서 내가 구해준 건?”
“안 난다고.”
“그럼 동굴에 들어갔다가 입구가 막혀서 200일 동안 갇혀있다 스스로 부수고 나온 건?”
“”대체 200일 동안 뭐 했는데!?“”

뭘 하면서 200 일 동안 그 동굴에 있을 수 있던 거야?!

푸웃.

갑자기 메르디스는 미소를 지으며 웃어보였다.

“맞아.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데.”
“·······일단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한 번에 끝내죠.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시죠. 솔직하고 정확하게. 전부 다.”

* * *

우리는 밝은 색상에 로브를 뒤집어 쓴 다음 거리로 나왔다. 오랜만에 길거리를 제대로 걸어보는 기분이었다. 아참, 우리가 지금 왜 이 길거리에 나와 있냐. 그것은 바로 협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디오의 말로는 루드의 마스터와 우리 스승님을 협회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렇게 협회로 가기 위해 걸어가던 도중, 조금 미간이 찌푸려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뭐, 검은 마법사와 인형의 마법사?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갑자기 튀어나와선 유명세들을 얻을 때부터 무지 수상했다고! 이제대로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이지. 그 동안 사람들은 다 속아서 죄인을 찬양한 거 아냐!”

그러는 저 사람은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나대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저렇게 험담을 한다고 저 사람의 평판이 높아지지도 않고, 실력이 늘어나지도 않는데, 저거 보면 실력도 없는 거 아니야? 1급 마법사가 흔하지도 않고, 해봤자 3급 정도이겠네.

저 사람 무리 전체가 나랑 루드를 까고 있잖아. 짜증나.

“하여튼, 그런 놈들 때문에 우리 같은 선량한 마법사들이 욕을 먹는 거지. 그러니까 이번에 확실히 본 보기를 보여야 돼.”
“잡아서 목이라도 치던가!”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선량이라는 뜻과 멀어진다고. 선량이라는 뜻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엄청 짜증나서 저걸 때리고 가고 싶은데 말이야. 명분이 없으니······.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어야―”
“―닥쳐!!!”

오, 박력이 넘치는 여자 목소리다. 걸 크러쉬······! 멋져!! 근데, 저 목소리 주인. 어디선가 많이······· 그래, 노래하는 세렌이었나. 라비에서 마주친 것 같은데. 저 여자 하는 말 듣고 타이밍 맞춰서 나서야지.

“수준 떨어져서는 더는 못 들어 주겠네. 그딴 수배지 두 장에 뭘 멋대로 판단하고 무식하게 떠들어 대는 거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건 바로 당신들 입이야. 멋모르고 날 뛰는 그 놈의 주둥아리라고!”
“―뭐, 뭐야?!”

멋진 말이군,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은 바로 당신들 입이야······! 언젠간 나도 사용하게 되면 좋겠다.

“저게 미쳤나······! 야. 다시 지껄여 봐!!”
“어, 어떡해요. 세렌님······!”
“겁먹지 마! 호위도 있는 마당에 저딴 놈들에게 쫄 것 없어!”
“오호라.”

곧 싸울 것 같은데. 그러면 조금 더 있다가 여자라서 왕자님은 아니지만 백마 탄 왕자님처럼 등장해 볼까. 저 녀석을 아주 하늘에 매달아 버릴 수도 있을 거고.

“호위까지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꽤나 있는 집 아가씬가 보네.”
“잠깐, 귀족인 거 아냐?”
“―뭐든 상관없어! 이런 상황에 수배까지 내려진 ‘죄인 들’을 두둔했으니 그것 떠한 죄가 되는 거 아니겠어?”

나는 루드에게 귓속말로 내가 저기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변신한 다음 들어가서 싸움을 말리겠다고 이야기했고, 루드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장 사람들의 인적이 많이 안 닿는 곳으로 가서 모습을 변신시켰다. 키는 약 160cm의 미소년. 루드와 닮았지만 좀 더 눈매가 날카롭고 빨간 머리에 붉은 눈으로 바뀌었다. 로브를 까맣게 물들이고 옷도 정장처럼 바꿨다. 이 정도면 되겠지.

“꺄악―!!”
“아니, 아니!! 이럴 수가! 그냥 겁 대가리를 상실한 계집인 줄 알았더니 이거 상당한 거물이잖아?!”
“누군데?”
“왜― 그 라비! 라비의 대 스타! 노래하는 세렌! 확실해! 분명 본 적 있다고!”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며 지팡이를 들었다.

“당신 같은 유명인이 호위 수준이 왜 저 따위야? 뭐―”

바로 나는 그 남자 앞으로 나타났다.

“뭐.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런 아쉽군요. 당신 머리를 찍어버리려 했는데.”
“이 자식이!!!”

나는 로브를 벗고 팔에 걸친 다음 뒤돌아 웃었다.

“아아. 세렌 님. 죄송합니다. 조금 늦어버렸네요.”
“어······?”

세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소드 스틱을 만들었다.

“저는 시니가미. 사신입니다.”

칼을 그들에게 겨누며 잔혹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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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18 13:27 | 조회 : 2,080 목록
작가의 말
백란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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