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2)

"흐흠~"

콜라 한 캔을 순식간에 비운 연지는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달달하고 차가운 액체가 톡톡 쏘아대며 온 몸에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정도로 조그맣게 흥얼거리며 캔을 버렸다.

"응?"

등 뒤로 캔이 떨어지는 약간은 시끄럽지만 청명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명히 캔이 거의 없었는데?'

소리가 안 날리가 없었던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는 의아해하며 몸을 돌린 연지는 그 상태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요전번에 아이의 모습을 한 귀신을 만났을 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상이라며 빨간 불을 키고 있는데, 지긋이 자신만을 응시하는 눈빛에 얼어버린 몸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한 손에는 찰나의 순간에 잘도 잡아낸 붉은 콜라캔을, 한 손에는 따뜻할 것이 분명한 유자차 캔을 들고 있는 한울의 표정은.....

'응?'

처음에는 화가 났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 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좋다고 홀라당 마셔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한울의 표정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무섭기도 했고, 또 그 상태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맞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한가지의 감정이 아닌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절망감 같은 것이 혼재되어 있는 표정이었다.

"한울....오.."

그 표정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윙-하고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 .....아!'

누군가의 절망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절함과 절망이 가득 담긴 절규하는 짐승과 같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머리가 웅웅-거리고 주변의 것이 흔들려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거리가 먼 것 처럼, 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아득해졌다.

한울은 그런 연지의 손목을 잡고 끌어내듯이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도착하는 순간 검은색 도포를 입은 모습으로 변한 한울은 연지를 보물이라도 되는냥 꼬옥 끌어안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쾅!

거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달리고 날아서 도착한 곳은 진욱의 집 앞 창문이었다.

감속을 할 생각도 못한 한울은 연지를 감싸고 몸을 돌려 창문에 어깨를 박아버렸다.

커다란 소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뭐야?"

마침 같이 있었던 도비와 진욱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임을 감지하고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진욱아! 무슨 일 있니?!"

장을 보러 나가려던 정원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목소리를 높여서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장난하다가 공이 창문에 맞아서 그래요! 신경쓰지 마세요!"

"알았다! 조심해서 놀아! 엄마는 잠시 장에 좀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요!"

크게 대답한 진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잠궜다.

분명히 어떤 것과 관련된 상황인데 괜히 부모님이 본다면 일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질지도 몰랐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연지를 눕힌 침대로 다시 온 진욱은 한울의 표정을 보고 잠시 주춤했다.

분명 좋지 않을 것이 뻔한 여러가지 감정들로 물든 얼굴이었다.

"도서관에서 잠시 음료수를 뽑으러 갔다 왔는데 누구한테 받았는지 콜라를 마셨더라고. 근데 기운도 이상하고 갑자기 정신도 잃으려는 것 같아서..."

다 큰 성인남자의.

아니, 이미 죽은지 오래인 몇백살을 먹으며 온갖 죽음과 아픔을 다 봐 왔은 한울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 때 봤던 그 원령의 짓인 것 같아."

연지의 기운을 살피던 도비가 말했다.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은 거야. 만약 계속 지속된다면 다음에 추적하기도 쉽고, 허약하게 만들 수 있거든. 그래도 네가 바로 데려와서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이상하네....'

도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봤을 때도 강해보였던 원령이 이 정도만 손을 써 놓은 것이 걸렸다.

하지만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연지의 이마 위로 살짝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지금 당장 기운을 모두 없앨 수는 없어도, 더욱 약화시키고 퍼지는 것을 멈출 수는 있었다.

"아마 정신을 잃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일거야. 걱정하지 말고 잠시 기다려."

도비와 눈이 마주친 진욱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도비는 순식간에 방에서 자취를 감췄다.







숨소리 조차도 다 들릴 정도로 진욱의 방 안은 조용했다.

진욱은 평소와 다르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한울을 바라보았다.

정확이 말하면, 숨조차도 쉬지 못하고 있는 한울을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는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울고 있는 한울이었다.

아주 오래 전 그 날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연지가 방에 올 때까지만 해도 심장이 떨리던 진욱은 오히려 더욱 더 차분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아까 그 녀석도 괜찮다고 했고. 저래 보여도 오래 살고 능력도 있으니까 금방 괜찮아지게 만들거에요."

적에게 다정한 말이라니.

진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진욱의 말에 한울도 무언가 할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단지 연지에 대한 걱정 뿐이 아닌, 기억할 수도 알 수도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왠지 모를 익숙함에 젖어버려 무언가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복잡하기만 한 머리와 마음 때문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살짝 한숨을 내쉬며 진욱이 말을 덧 붙였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럴 운명인가보다.

"어떤 일이 생겨도, 연지는 괜찮을 거에요."

연지에 미묘하게 힘이 들어간 말에 한울이 진욱을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알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은 진욱이 대답했다.

"압니다. 확실히."

조금은 딱딱한 말과 연결 지을 수 없는 부드러운 손길로 진욱이 연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정말로요. 이건 확실한 거니까 믿으시죠."

그리고 전혀 흔들림 없는 올곧은 눈빛으로 한울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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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15 18:52 | 조회 : 1,548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전부터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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