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새로운 시작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화 낸거야?"

이마를 맞댄채로 예쁘게도 웃어보이는 한울 때문에 연지는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우물쭈물 시선을 다시 내리깔며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손목을 감싸쥔 한울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응?"

그러한 연지의 행동에 뭐가 그리 좋은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며 한울이 재촉하듯이 물어왔다.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쉰 연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왠지... 그냥, 왠지 서운하기도 하고, 약간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기분이 좀 이상해서 그랬어요..."

자신에게 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채로 작은 입술을 움직여서 뱉어내는 말에 한울도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오해한 지도 모르고... 괜히 불편하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슬쩍 한울의 눈치를 보며 사과를 하는 연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울이 잡고 있던 연지의 손목에 힘을 주어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한울의 다리 위에 어정쩡하게 걸터 앉은 채로 품에 파묻혀버린 연지를 한울은 더욱 더 꼬옥 껴안았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머리는 어지러웠고, 그저 기쁨과 알 수 없는 즐거움에 잔뜩 들떠서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까 계단에 앉아있을 때 보이던 희미한 윤곽선에 색까지 입혀지듯 감정이 점점 더 강하게 다가왔다.

자신도 몇 백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이런 느낌의 이유도, 그 원인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서원의 말대로 계속해서 질질 끌어서는 안된다는 확신 뿐이었다.

급히 입을 열어버리면 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자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이 작은 몸까지 꿈처럼 사라져 버릴까봐 한울은 연지를 더욱 힘주어 안으며 너무나도 격해진 감정들을 누르려고 애를 썼다.

"저기...."

한울의 품 속에서 바르작 거리던 연지가 한울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가자 조심스레 한울을 불렀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더이상 사이가 멀어지지 않게 되어서, 오해를 풀게 되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격한 기쁨이 느껴졌다.

"있잖아."

연지의 부름이 신호탄이 된 듯, 당황하고 있는 연지를 진정시킬만한 차분한 음성으로 한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도 그래."

"네?"

"나도 그렇다고."

"뭐가...."

"나도 너랑 저 옆집 애랑 엄청 잘 지내는 걸 볼 때, 걔가 나보다 너를 훨씬 많이 봐서 더 편하고 친하다는 것도 알고 그게 당연한 거라는 것도 아는데 괜히 서운해."

투정부리 듯이 한울이 말했다.

겉 모습으로는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 열 배 이상을 산 것인데, 저기 멀리에 있는 후손의 후손의 후손 뻘인 남자에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에?"

"무슨 여자 애가 겁도 없이 다 큰 남자애네 집에서 자기 집처럼 자고 그러면 엄청 화도 나. 괜히 너희 가르치라고 있는 선생님이 너한테 뭐라 그러면 내가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여튼 너에 관련 되서는 나도 기분이 되게 이상해."

거기까지 말한 한울은 조심스레 연지를 자신의 품에서 떼어내 천천히 눈을 맞췄다.

"나도 죽은지 오래 되서, 이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살아있었을 때에는 있었는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낯설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는데..."

한울은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살짝 호흡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열기가 가득 담겨있는 그 숨결이 닿자 연지의 몸도 살짝 떨렸다.

"이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거야."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서, 하나의 거짓도 없다는 듯 올곧은 눈으로 자신에게 내뱉는 말에 연지는 호흡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은 감정을 느끼는 너도 나를 좋아하는 거고."

부끄러움에 시선을 돌리려는 연지의 눈을 한울이 순식간에 쫓았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어보였다.

"지금 우리 둘은, 좋아하고 있는거야. 서로."

거기까지 말한 한울은 어린아이를 안듯 조심스레 한팔로는 연지의 허리를, 한팔로는 머리를 감싸고는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처음 느껴보는 행복을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게다는 듯이 한울은 연지의 입술을 더욱 더 깊게 탐했다.







"응?"

자리에 누워있던 도비가 이상한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상을 찌푸리고 창문에 다가가자 기분 나쁜 기운을 가진 어떠한 형체가 보였다.

"왜그래?"

도비의 행동에 진욱도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저기, 기분나쁜게 있는데?"

"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가다싶이 한 진욱은 연지의 집 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형체에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원령이네."

도비가 툭 던지듯이 중얼거렸다.

"원령이라고?"

"응. 원령."

"저거, 많이 위험한 건가?"

"일단 원령인 이상 위험하긴 하지. 게다가 무슨 원한을 가졌는지, 기분도 되게 나쁘네. 자체가 강한 것도 있겠지만, 집념 같은 게 상당한가봐. 다른 귀신도 집어삼킨 것 같은데?"

도비의 말에 진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냥 지나가는 건 아닌 것 같지?"

도비의 말에 진욱은 그저 입을 꾸욱 다물었다.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연지의 집에서 멀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연지의 집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모습이 걸렸다.

고민하던 진욱이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가려는데, 도비가 진욱의 손목을 붙잡았다.

"안돼.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서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내가 내 친구들이랑 가서 조금 더 알아보고 있을테니까, 너는 여기에 있어. 혹시 모르니까 연지 계속해서 신경 쓰고. 알았지?"

".....어."

평소와 다르게 차분하게 말하는 도비에 진욱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러니저러니해도 친구가 최고지? 그럼 나는 갔다 올테니까 너는 좀 자둬. 이따가 보자~"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의 진욱에게 도비가 장난스레 웃으면서 창문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라고?"

한울이 인상을 찌푸리고 연지를 바라봤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같이 맞는 아침은 정말 좋았다.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아침을 준비하려는데 부탁이 있다는 연지의 말에,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 활짝 웃으며 뭐냐고 물었던 한울이었다.

그에 '진욱이 방으로 다시 데려다 주세요...'라는 앙큼한 말에 절로 인상을 찌푸려진 터였다.

"내가 어제 분명히 내 감정이 어떤지 말한 것 같은데? 벌써 다 잊어버린 거야? 다시 말 해줘?"

"잊, 잊어 버린 게 아니에요!"

질투의 감정과, 그 이유까지 완벽하게 인식한 한울은 더 이상 그 기색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질투하고 있다는 티를 여실히 내며 말하는 한울에게 연지가 오해라며 양 손을 급하게 흔들었다.

"그런게 아니라... 어제 진욱이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신발까지 다 벗어놓고 온 마당에 제가 갑자기 없어지면 이모랑 삼촌도 엄청 걱정하실거에요. 안그래도 제가 어제 괜히 걱정을 많이 끼쳐드려서 죄송한데... 갑자기 없어진 거 아시면 많이 당황하실 것 같아서요."

거기까지 말한 연지가 슬쩍 한울의 눈치를 보았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 뱉은 한울이 곱고 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괜히 일이 커지면 연지와 같이 있는 시간을 더욱 방해받을 것이 뻔했다.

걱정된다면서 자신의 집에서 좀 더 머물라고 할 지도 몰랐다.

"일단, 알았어."

"감사합니다!"

"근데 조건이 있어."

지금 연지를 빨리 그 집에 데려다 주는 게 자신에게도 연지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왠지 심통이 나 한울이 말을 덧붙였다.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기울이는 연지에 한울이 푸스스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숙여 연지에게 눈을 맞췄다.

"뽀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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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24 12:23 | 조회 : 1,520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 마스 이브는 어떻게 보내시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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