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생각지 못했던 기억의 한 조각(1)

"안녕히주무셨습니까?"

잠옷차림으로 부엌에 내려온 연지를 보고 여울이 인사를 건넸다.

이주일 동안 잘 적응을 해서 이제는 처음의 그 어색함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울이 생김새만큼이나 단정한 손놀림으로 전자레인지의 버튼을 눌렀다.

그 동안 요리를 해 보려는 시도가 몇 번이나 더 있었지만 결국 모두 처참히 실패했다.

결국, 한울은 밥과 반찬 등을 모두 만들어 두고 여울에게 데우는 법을 가르쳤다.

다행히 손재주만 없는 것인지 간단히 국을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리는 데에 있어서는 실수가 없었다.

"네. 여울씨는 잘 쉬셨어요?"

"예. 선배님은 알아볼 게 있다고 나가셨습니다."

여울이 건네는 컵을 받아든 연지는 꿀꺽꿀꺽 물을 마시며 밤 사이 마른 목을 축였다.

연지와 여울과의 관계가 불편함을 벗자마자 한울은 악귀에 대한 것을 더 알아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방학이 며칠 남지 않게 되자 밖에 나가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불안한 중에, 얼마 전 다시 한 번 의문의 교통사고가 발생했었다. 그 뒤로 한울은 부쩍 더 불안해보였다.

여울이 자신에게 맡기라고 해도 자신의 손으로 해야한다며 고개를 저었던 한울이었다.

덕분에 연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울과 붙어지내야만했다.

"내일 보러가시는 시합도 저와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죠?"

내심 섭섭해하는 연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여울이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진욱의 시합을 보러갈 때에는 같이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네, 그럼요."

연지가 서운한 마음을 감추려 애써 입꼬리를 당기며 웃어보였다.

오래간만의 외출인데, 여울에게 하루만 일을 맡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꾹꾹 눌렀다.

모두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투정을 부릴 수가 없었다.







"우와~"

연지는 커다란 규모의 대회장에 입을 벌렸다.

진욱 때문에 몇 번 와 봤지만 올 때마다 신기했다.

"여기야! 여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인 경기장에서 두리번 거리는 연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아~"

방학하고 처음보는 서연의 얼굴에 연지가 뛰어가서 품에 안겼다.

"나는 안 보이는 거 아니지?"

"아니지~ 김훈도 안녕!"

서연의 품에 안긴채로 훈이에게도 인사를 한 연지가 베시시 웃었다.

얼마나 지났다고 일 년은 못 봤던 것처럼 반가웠다.

"하여간. 자기는 이제 대학 다 갔다 이거지? 응? 학교 안 나오는 건 그렇다쳐도 뭐가 얼마나 바빠가지고 놀아주지도 않는거야. 보충수업도 혼자듣고, 끝나도 놀아줄 사람도 없고!"

"훈이랑 잘 놀러다닌 거 다 알거든?"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카톡했잖아!!"

주욱 자신의 볼을 잡아당기는 서연의 손을 잡아당기며 연지가 항변했다.

"뭘 잘했다고! 어디 몰래 남자라도 숨겨놓은 거 아니야?"

"그래!"

"그래는 뭐가 그래야! 넌 진짜 혼나야돼!"

그래도 봐 줄 수 없다는 듯 서연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꺄르륵- 터져나오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 뒤로 단정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울은 조용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한울에게 전송했다.







위잉-

옅은 진동소리에 핸드폰을 꺼낸 한울이 살짝 미소지었다.

친구들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는 연지의 사진과 함께 '잘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짤막한 글이 써 있었다.

항상 집에만 있게해서 미안했는데, 오랜만에 나가서 노는 모습을 보니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뭐야?"

갑자기 헤실헤실 웃는 한울에게 도비가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한울이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며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아니긴 뭐가 아무 것도 아니야. 보나마나 연지 사진이라도 받았겠지. 혼자 좋아서 아주 좋겠지."

누구 속도 모르고.

자신의 유일한 인간 친구인 진욱을 생각하며 도비가 투덜거렸다.

"그래. 그래서 이쪽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틈을 놓치지 않고 슬쩍 비아냥 거리는 도비의 말을 끊으며 한울이 물었다.

'네가 진욱이한테 몹쓸 짓한 놈이야?!'라며 처음부터 적의를 들어냈던 녀석이었다.

초반에는 어려보이는 애가 까분다고 생각해서 언짢았지만 계속 만나는 동안 익숙해졌다.

"뭐, 그렇지. 이쪽에 또 한 원령이 떠돌아다닌다는 걸 들었거든. 멀지 않은 곳이니까 흡수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올 것 같아."

"오늘은 좀 만나봤으면 좋겠네."

"동감. 그래야 네 얼굴도 그만 보지."

"같은 생각이다."

둘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기척을 숨겼다.

계속해서 원령의 뒤를 밟은 결과 이 근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에서 다른 원혼을 흡수하고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몇 번이나 잡으려고 했었지만, 번번히 놓치고 말았었다.

그러던 중 도비의 친구들을 통해 이 근방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째 조용히 기척을 숨기고 원령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기척을 숨기고 감각을 세웠다.

조금 지루해질 쯤 확-끼쳐오는 기운에 한울과 도비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원령을 주목하니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영혼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듯 싶었다.

슬쩍 눈짓을 주고받던 한울과 도비는 순식간에 몸을 던졌다.






아직 물들지 않은 영혼에게는 약한 주술을 걸어 움직이지 못하게 해 둔 다음 한울과 도비가 최고의 힘으로 원령에게 달려들었다.

몇 번이나 놓칠 뻔하며 엎치락 뒤치락한 하던 중 도비가 강원도 산기슭에 살고 있는 강한 또다른 도깨비 친구에게 받아 온 물약을 뿌렸다.

원령이 싫어하는 것들과 강한 기운을 넣은 물약이었다.

"끄어어어억!!!!"

물약이 닿은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듯 원령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쳤다.

여지껏 수 많은 영들을 잡았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고 하나의 덩어리에서 여러 얼굴이 보이기도 하며 괴로워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한울은 이 날을 위해 가지고 다니던 부적을 들어 중얼중얼거리며 주술을 건 뒤 원령을 향해 던졌다.

"끼어아아아악!!!"

더욱 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고통이 전해졌지만 워낙 강력했던 터인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끔찍한 소리와 함께 괴로워하던 원령에게서 푸스스-하는 소리가 나더니 점점 몸집이 작아졌다.

"아..."

결국에 남은 것은 꽤나 자그마한 체구를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원령이 매서운 눈빛을하며 한울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한울에게서 한치도 떨어지지 않는 흉흉한 눈빛에 도비가 한울을 올려다봤다.

한울도 인상을 쓰며 여자의 눈빛을 받아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자신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연지를 위험하게 하려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거야?"

"하하하하하!!"

한울의 물음에 원령이 목청을 높여서 웃었다.

"그래... 너는 네가 한 짓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구나."

"뭐?"

"그 날! 십년 전 그날! 그 날은 안 잊었겠지. 네가 그 여자애를 살린 그 날 난 죽었어!"

원령이 악에 받힌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십년 전 교통사고.

연지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같이 죽어야했던 연지를 살렸던 그 날.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오자 한울의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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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8-16 13:20 | 조회 : 1,564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오랜만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더운데 몸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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