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변수와 의문

연지를 올려보낸 뒤 둘만 남은 방에서 여울은 한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아직 오해가 안 풀리신 겁니까?"

설명이 끝나고도 계속 입을 열지 않는 한울에 여울이 물었다.

"아니. 솔직히 기분이 나빴던 것은 맞지만 네가 그럴 녀석이 아닌 것도 알고. 연지를 도와주려고 그런건데 그건 괜찮아."

순간, 약 십분 전 자신을 죽일 것 같이 노려보던 눈빛이 스쳐지나갔지만 여울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여기 왜 있는 거야?"

순수한 궁금한 반, 아직 다 사그러들지 않은 사적인 감정 반을 담아 한울이 물었다.

한울이 자신에게 화가 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확실히 마음에 안든다는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마음 속으로 작게 고개를 저은 여울이 꼭 맞춰놓은 퍼즐마냥 닫고 있던 입을 뗐다.

"단율님이 보내신 겁니다."

"뭐?"

한울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저번에 받은 약부터 그녀석은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사람 무섭게. 몇백년 동안 안 그러다가 왜 그래?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아닙니다. 단율님은 별 탈 없이 잘 지내십니다."

"그래. 그렇다치고. 그래서 널 보낸 이유는 뭔데?"

"한율님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여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한울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단율님께 보고를 올렸고, 단율님께서 저를 더 보내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겁니다."

복잡해보이는 한울의 얼굴을 보고 여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해서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수상한 점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사고 장소가 이곳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여울의 말에 한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아까 그 요괴도 그렇습니다. 하급 요괴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집에 쳐져있는 결계를 뚫고 들어온 겁니다. 예전에 선배님께서 말하신 악령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이곳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옥황상제는 알아?"

생글거리는 낯짝을 떠올리며 한울이 물었다.

실없어 보이기는 해도 잘못 건들였다가는 괜히 일이 커지는 수가 있다.

"예. 단율님과 약간의 거래를 한 것 같기는 하지만 허락받은 일이니 걱정하시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이쪽에는 좋은 상황이었다.

집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연지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은, 그 몫만큼 연지의 안전이 확보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재미없다고 이러니저러니 하기는 하지만 여울은 꽤나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저승사자였다.

"그러면 저는 가져온 부적을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인사를 한 여울이 조용히 문을 통과해 나갔다.

여울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울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힘주어 꾹꾹 눌렀다.

단율과 옥황상제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래 한울의 입장에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어찌되었던 간에 둘이 자신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연지였다.

자신이 없었던 사이에 연지가 위험에 처했던 상황과 앞으로는 더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소식.

상상만해도 정신이 아찔해졌다.

"....도움을... 청해야하나..?"

도무지 혼자의 힘으로.

아니 여울까지 함께 한 힘으로도 걱정이 되자, 인정하기는 싫지만 도깨비와 진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엄청난 도움을 줬으므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에 어패가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야?"

소파에 누워 게임기를 빠른 속도로 누르며 염라대왕이 말했다.

"꿍꿍이라니?"

"갑자기 말이야. 왜 한울 그 녀석을 도와주냐고."

"글쎄.. 도와주는 거라고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옥황상제가 싱글싱글 웃으며 주스를 입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단율한테는 왜 더 참견하시 말라는 조건을 내 건거야? 진짜 항상 이야기하지만 알 수가 없어. 저번에는 너무 불공평한 게임인 것 같더니 이번에는 또 뭐야?"

"일단 그 아이의 안전을 지켜야지. 몇 명이 관련되어 있는 건데. 그리고 그 악령은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야."

"여튼 진짜 모르겠다."

게슴츠레 옥황상제를 바라본 염라대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태도 저런 변태가 따로없지.

"그건 그렇고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긴 신기해. 그치? 그렇게 되었었는데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것도 그렇고 일이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옅은 실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변수로 나타나서 큰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지?"

염라대왕의 말에 옥황상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변하니까 재미있는 거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으며 염라대왕이 말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해 본 판은 거의 다 짜여졌어. 이제는 그 아이들 몫이겠지."







집 울타리와 집에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붉은 부적들을 붙히고 온 여울과 몇마디를 더 주고받은 한울은 곧장 연지의 방으로 올라갔다.

마음이 무거웠다.

빨리 가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얘기 다 끝났어요?"

벌컥 문을 열자마자 연지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걱정하느라 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있었었다.

꽤나 심각한 분위기였던 데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관계되어 있는 것이 확실해서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했었다.

"응."

침대에 걸쳐앉은 한울이 연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둘이... 싸운 건 아니죠?"

"원래 나랑 맨날 티격태격하는 녀석이야. 신경쓰지 마."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아보이는 예쁜 눈으로 한울을 바라보던 연지였다.

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묻기가 미안한 것인지 시선을 내리는 연지를 한울이 꽈악 껴안아버렸다.

"으이그~"

살짝 볼을 잡고 흔든 한울은 연지를 안은채 풀썩 침대위로 쓰러졌다.

보송보송하고 푹신한 이불에 몸을 묻고는 연지를 조금 더 힘줘 안았다.

"...더... 위험해진거죠?"

품 속에서 꼼지락 거리던 연지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하지만 다른 어떤 소리보다 한울의 귀에는 크게 들려왔다.

한울이 입을 열지 않자 연지가 말을 이어나갔따.

"예전에 오신 이유가 저를 지켜주시려고 했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도와주셨었고... 그런데 저번에 콜라도 그렇고, 아까 오신 저승사자 분도 오빠를 도와주러 왔다고 하고.... 전보다 더 위험해진 건가요?"

품에 폭 안길만큼 작은 아이에게 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연인에게 거짓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요즈음의 상황이 그리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있는데 거짓을 이야기해봤자 더 불안할 뿐이다.

"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지. 그래도 막 정말 위험하고 그런 거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봐봐. 위험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괜찮았잖아. 그리고 아까 본 그 녀석 그렇게 생겼기는 해도 실력 괜찮은 녀석이다? 같이 있으면 나보다 훨씬 도움 될지도 몰라."

아이를 어르듯 연지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한울이 말했다.

"내가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지? 나 저승사자인거? 한 번 죽은 몸 무서울 것도 없어."

"그게 뭐에요~"

장난스러운 한울의 말에 연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긴 뭐야. 그냥 걱정하지 말고 내 말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계속 재밌게 잘 지내자는 얘기지~ 그러니가 앞으로 편식하면 안된다?"

"그거랑 편식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무슨 관계라니! 중요한 관계지~"

한울은 몸을 일으켜서 연지를 살살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옆구리며 목이며 계속해서 건들이는 손길에 연지는 숨이 넘어갈 듯 깔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까의 방을 가득 채웠던 걱정이며 불안함이 웃음에 의해 걷혀갔다.







물에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나온 진욱을 보며 도비가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연습할때도 붙어있어 놓고는 일 년만에 만난 것 마냥 반가워하는 모습에 진욱이 피식 웃고 말았다.

"뭐냐. 피곤하니까 비켜봐. 눕게."

"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조사를 하다가 들어온건데!!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래? 적당히 쉬어가면서 하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진욱의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로 가서 자리를 잡는 도비였다.

오늘 하루 종일 연습에만 매달린 진욱이었다.

실력도 좋은데다가 체격조건까지 받쳐주는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지 않고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열심뛰었다.

"이번에도 우승도 하고 그래야지."

"진짜 열심히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죽으라고 열심히 하는 거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그리고 엄마아빠한테 보답하고 싶기도 하고."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 너는 예외이기는 하지만, 네 또래 남자애들 입에서는 듣기 힘든 말인데."

도비의 말에 진욱은 눈을 감고 잠시 과거를 생각했다.

"소중하지. 연지도 연지지만, 가족들도 내게 허락된 선물같은 거니까. 이야기가 통하고, 서로 위해주고, 화목하고. 평범해 보이는데 찾기 힘든 풍경이잖아. 그냥 그 속에 내가 녹아들어가있다는 것 만으로도 넘치게 감사할 일이지."

무언가가 느껴지는 눈빛에 말이 많던 도비도 조심스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뭔 조사를 하고 온건데?"

도비의 머리를 콩!하고 한 대 때린 진욱이 베게를 매만지며 도비에게 물었다.

"조사? 아..맞아."

멍하니 묻던 도비가 자신이 알아온 것을 떠올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그 악령이 노리는 게 연지가 아닐지도 몰라."

"뭐?"

"아무리 찾아봐도 연지랑은 원한관계를 맺은 사람이 없단 말이야. 게다가 다른 원령들과는 다르게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콕 집어 누군가가 타겟인 것으로 보이잖아. 아무래도 그 저승사자를 노리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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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02 22:27 | 조회 : 1,436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정말 오랫만이에요 ㅠㅠ 다들 시험은 끝나셨나요? 아직 안 끝나셨으면 제가 못 본 몫까지 잘 봐주세요.//저희 집에서는 벌써 모기가 나왔어요. 다들 벌레 안 물리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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