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소녀의 시계는 멈췄다.

"바다로 가는 표 주세요."
"바다로 간다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건지…"??

설명도 없이 무작정 '바다로 가는 표'를 요구하는 나에게 직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직원의 말을 끊었다.

"바다요. 최대한 멀리 있는 곳으로."?
조금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직원은 가장 먼 바다로 가는 표를 나에게 건냈다.
?"여기 있습니다. "?

계산까지 완료. 얼마 없는 돈을 써가면서 산 표였다.
이유는, 바다로 가기 위해서.?
멀면 멀 수 록 좋았다.
멀리 있는 지역일 수 록 나를 아는 사람은 적어질 테니까.
?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차였다.
버스를 탈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기차였을까, 하면?마지막 남은 '낭만'이라고나 할까.?흔히들 말하는 낭만 중에 하나가 '기차여행'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안내방송이 들렸다.
친절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지금 출발하니, 어서 타라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찬 바람을 피해 기차 안으로 들어가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내가 살아온 나날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나는 나인데도, 나는 나를 가지지 못한다. 나 자신을 쥐지 못한다.
'나'라는 사람은 오늘도 사회에 치이고 사람에게 치이고 그 자신에게 치였다.
아무리 힘들어해도, 괴로워해도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사람들은 그저 지켜보았다.

어쩌면 안도감, ?어쩌면 즐거움,?어쩌면 만족감,?또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삶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늘 한정적이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간신히 버티다가도 다시 나가는 파도에 물과 뒤섞여 지저분하게 사라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것의 최후였다. 언제나.??
학교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그만둔지 오래였다.그곳에서도 친구는 사귀기조차 힘들었고, 친구를 사귀어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부모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부모에 대한 마음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돈이나 재산이라도 내가 그렇게까지 비참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텐데.?최소한 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당당해질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적인 사람, 이기적인 사람, 그리고 혼자 다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좋았다.?내가 노력해도 나에 대한 평판은 나아지지 않을테니까.
이것이 내가 노력한 뒤에 얻은 결론이었다.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제법 밝은 시간대에 출발했던 것 같은데 도착하니 어느새 하늘은 검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오자마자 바다로 향했다.
더욱 차갑고 거세진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고운 모래를 손으로 쥐자, 손틈 사이사이로 고운 모래알이 떨어져내렸다.
검푸른 바닷물이 몰려왔다가 다시 밀려가기를 반복했다.
그 때마다 거품이 하얗게 일어났다.?

이 세상을 뜨기 위해 태어난 사람.
버림은 받을 대로 받고서도 정작 버림 받은 그 자신은 버릴 것조차 없는, 그런 사람.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사람.
혹은, 그 존재 자체가 너무도 미약해서 있으나 마나인 사람.?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당신도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지만, '소중한 사람'이라기에는 세상의 대우가?너무나도 차갑다.?

그 '소중한 사람'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는 언제 세상을 떠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앞으로도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만약 사람의 인생을 하나의 시계로 놓고 본다면,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째깍째깍' 소리내며 흘러가던 시간이 언제쯤이면 멈추겠지.
그 때는 내 시계가 언제쯤 멈출 지 궁금했더랬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시계는, 지금 멈춘다는 것을.


***
검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완벽하게 검은 빛깔로 변해있었고,여자가 뛰어내린 허공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검은 색만이 그 자리를 가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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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2-05 20:20 | 조회 : 1,758 목록
작가의 말
상자 속 작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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