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76화





눈을 감았는데도 내리쬐는 햇빛에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눈을 뜨고서는 시계를 확인해보니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늦은 시간이었다. 만약에 등교를 해야하는 평일이었으면, 완전 지각인 시간이었다. 일요일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왜이렇게 머리가 깨질 것 같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왜 이런 바닥에서 내가 이러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가, 갑자기 어제의 일이 생각이 났다. 나는 빨리 책상위에 던져놓았던 어제의 공책을 다시 펼쳐보았다. 책상에 앉을 생각도 못한채 그냥 엉거주춤 서서 공책을 뒤적여봤다.



어제 내가 본 부분말고도, 규칙적이지 않게 아무곳에나 윤 설의 심정이나 생각이 쓰여있었다. 글씨체도 어제 본 페이지의 글씨체와 같은 것 보니까, 똑같은 사람이 쓴 글씨체였다. 물론 그 아이는 아마도 사고를 당한 후의 윤 설이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공책에 적혀있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봤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것들은 없었지만,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계속 이수한이라는 이름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부모님에게 여쭈어봐도 모른다는 말 밖에 없었다고 적혀있기도 하며, 자기자신도 답답하다는 소리가 적혀있었다.



‘애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안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윤 설이라는 아이와 연결점이 없었다. 있을리가 있을까.. 윤 설은 내가 읽던 책에서 나오는 악역 엑스트라였는데, 나와의 접점은 그 정도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대체 왜 내 얘기가 공책에 적혀 있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름인 사람을알고 있었던건가.. 하긴 나를 알리가 있나..’



나는 찝찝했지만, 더 이상의 과한 상상을 하지는 않기로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막상 내려가니까, 밑은 너무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듯한 분위기에 부엌으로 가니까, 아주머니께서 나를 반겼다. 아버지는 아침에 급히 일을 가신 듯 했고, 나머지 둘은 언제 나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챙겨주는 식사를 먹고, 다시 방 위로 올라갔다. 편두통 때문에, 무언가를 하기에도 힘들어서 올라와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로 거의 하루가 지났다.

사실 눈을 감을 때부터,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한 숨 자고 일어났어도 계속 아픈 내 머리를 감싸고는 다시 눈을 감을 뿐이었다. 마음 한 편에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그 기분을 무시하려고 했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너무나 답답하고,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기 시작했다. 이 답답함을 해결하려면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야 하는건지 생각해봐도 도저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걸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배게에 고개를 파묻을 때 갑작스럽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여운.....”





하여운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하여운이 그때 이수한의 이름을 듣고 기겁을 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하여운은 분명히 소설 속의 주인공이었고, 이수한이라는 사람을 알리가 없을 것이 분명한데, 그 때의 모습은 하여운이 동요를 하고 있다는게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하여운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분명히 하여운이랑 얘기를 하면 무엇이든 풀릴 것 같긴한데..'



나는 내일 학교에 가서 하여운과 얘기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여운과는 솔직하게 말해서 얘기하기도, 마주하기도 싫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하여운은 다른 애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게 분명했다.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 이 몸의 주인인 윤 설마저도 알지 못했던 윤 설의 과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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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운과의 대화를 하기로 결심하고 얼마안되서 나는 다시 잠에 든 것 같았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솔직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너무 생산적이지 않은 주말을 보낸 것 같았다.

다른 것도 아닌 주말인데, 너무나 아무것도 안하고 지나간 것 같아서 뭔가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시계를 보니까 어제 점심먹고 새벽까지 다시 쭉 잔 것 같았다.



곧 학교를 가야할 시간이었기에, 나는 얼른 샤워를 하고 공책을 챙기고서는 밖을 나서려고 했다.



아버지는 어제 나가서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은 듯 했고, 부엌에는 그 여자만 앉아있었다.





밖을 나서는 와중에도 그 여자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내 등뒤로 들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기에, 뭐라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말없이 그냥 나갔고, 뒤에서는 욕설이 들렸던 것 같다.





'대체 저 성격을 아버지 앞에서는 어떻게 숨기고 잘 사는건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냥 걸어가려고 했는데, 앞에서 기사님이 기다리고 서있었다.

오늘은 일부러 혼자가면서 생각하기 위해서 조금 일찍 나온걱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기사님께 말하고 나서, 아무생각하지 않고서는 가다보니까 어느샌가 학교에 도착하게 되었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을 보니까, 아직은 애들이 별로 없을 선도부도 안서있는 걸 보아하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내 교실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후에 하여운에게 할 얘기들을 잘 생각해보았다.



내가 어떤 식으로 얘기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었기에 천천히 내가 해야할 얘기들을 잘 정리해보았다.

솔직히 내가 하려는 얘기가 남이 들었을 때에는 미친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하여운은 알아들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여운이 모르는 척 하진 않겠지.."

"뭘 모르는 척 해?"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에 누가 앉는 듯한 인기척이 났다.

옆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옆을 쳐다봤다.

솔직하게 말해서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전혀 놀라지 않은 티를 내며 상대방을 쳐다봤다.





"오늘 왜이렇게 일찍 온거야?"

"백은호랑 아침에 싸워서 빡쳐서 그냥 나왔어."

"은호 형이랑?"

"......그놈의 은호 형은"

"뭔소리야?"

"......됐어. 그나저나 뭘 모르는 척하는데.. 하여운은 또 왜?"

"...아니 그냥 뭐 할 말이 있어가지고, 근데 백승호 너 왜그렇게 안색이 안좋아보여?"

"그냥 잠자리가 좀 사나워서 잘 못잤어."

"너도 잠을 못 잘 때가 있네."

"넌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그야 물론,....너는 광공 중 한명이니까..'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자, 백승호는 더 가까이 다가오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물어봤다.

백승호도 자기가 어떻게 생긴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얼굴을 내밀면서 다가오면 당하는 상대방은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아는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생각한 광공얘기를 백승호에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점점 가까워져서 조금만 더 있으면 아예 겹쳐질 것 같은 모습에 나는 멀어지려고 했지만, 언제 잡힌건지 백승호가 잡고 있던 내 몸에 의해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이대로 있으면 큰 일이 날 것 같은데, 역시 이 얼굴은 너무나 위험했다. 머릿속의 생각이 확 지워지느 느낌이 들만큼 위험한 얼굴이었다.



이대로 진짜 큰일나겠다 싶을 그 순간 갑자기 몸이 뒤로 확 밀렸다. 나도 나를 잡고 있던 백승호도 깜짝 놀란 상태로, 가만히 굳었다.

옆에서는 뭔가 짜증이 난 상태로 웃고 있는 이도하가 서있었다.





"....너네 뭐하는거야?"

"아..대화?"

"무슨 대화를 그렇게 붙어서 해.."



"우리가 대화를 붙어서 하던, 떨어져서 하던, 뛰면서 하던 너가 무슨 상관이길래 그렇게 짜증을 내고 있냐"

"내가 무슨 짜증을 냈다고 그래. 그냥 물어본거잖아."





누가봐도 짜증난 목소리와 표정으로 얘기하는 이도하였지만, 나는 괜히 끼어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옆에서는 계속 끝이나지 않는 얘기를 게속 반복했다.

애들이 점차 들어오고 있는데도, 계속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둘에 나는 그냥 하여운이 오기 전까지 엎드려버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고 앞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채로 문열리는 소리만 들렸지만, 나는 단숨에 하여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슬며시 들고는 하여운을 쳐다봤다.



이제 드디어 진실을 알게 될 때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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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2-27 22:56 | 조회 : 1,187 목록
작가의 말
gazimayo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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