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69화






"그게 너야 설아."
"....."
"너랑 지내다보니까 옛날처럼 괜히 날세우고 그러고 싶지가 않더라."
"...."
"그래서 할머니랑도 그 이후에 제대로 얘기해봤어. 할머니가 나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것도, 정말로 동생이랑 차별하지도 않고 나를 좋아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거든. 엄마를 평생 원망했는데 엄마가 남겨주신 이야기도 제대로 들었으니까."
".."
"버리긴 했어도, 마지막에는 생각을 해준건가봐. 남편이랑 같이 가다가 차사고가 심하게 났는데, 그 사고로 둘 다 죽어버렸다더라. 할머니가 동생이랑 같이 병원에 도착하고 조금 있다가 바로 숨이 멈췄다던데, 정신을 잡아가면서 할머니한테 그 사실을 얘기했다더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그러셨대."


김태겸은 그 말 이후로 다시 아무말도 안하고 땅망 쳐다봤다.
나 역시 해줄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설이 너가 중요해. 정말로 중요해."
"그래?"
"응.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정말로 너 아니었으면 나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을거야."
"......그렇구나"
"그런데 설아, 나 어제 이상한 꿈을 꿨어,"
"응? 무슨 꿈인데"
"하여운이 나왔어."
"하여운?"


별로 달갑지 않은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내 얼굴을 본 김태겸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무슨 꿈이었는데, 그만 웃어"
"알았어, 그냥 표정변화가 너무 웃겨서. 아니 사실 그냥 이 분위기가 그리웠나봐. 그냥 웃음이 나온다."
"........"
"알았다니까.. 그게 사실 나 너랑 만나고 다음년도 생일 때 선물 주려고 직접 만들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어."
"선물?"
"어. 나머지 애들이랑도 같이 만들긴했었어. 지금보니까 되게 촌스러워보이긴 하더라."


웃음을 짓는 모습이 뭔가 허탈한 웃음이었다,
저 선물과 하여운이 무슨 상관인건지 더 신경이 쓰였다.


"하여운은 무슨 소리야?"
"내가 준 선물이 가방걸이...였는데"
"응"
"너 되게 좋아하면서 받아줬었거든"
"그랬구나..."


솔직히 정말 기억이 안나서 무슨 반응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김태겸은 그런 나를 보더니, 웃으며 얘기를 계속했다.


"근데 하여운이 하필 너가 없어지고 나서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었던거 기억나?"
"응. 기억나지."
"아마 제일 먼저 나타났던게 나한테 였을거야,"
"너한테? 그걸 너가 어떻게 아는거야?"
"..신기하게도 너에 대한 기억이 없어지는데도 나머지 애들이랑 친구였다는 사실은 그대로였으니까. 파티같은 장소에서 만나면 얘기 같은 거 많이 하니까,."
"......"
"내가 먼저 하여운에 대해서 얘기했었던 기억이 나. 그러다가 아마 다음에 모임에서 만났을 때 애들이 다 어떤 애 얘기를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하여운이었을거야."
"......그게 가능하다는거야?"
"그러게. 그게 가능했네.."


'지금 김태겸의 말에 따르자면, 하여운이 제일 먼저 접근한건 김태겸이었다는 소리가 되는거지'


"내가 아까 너한테 줬었다던 가방걸이 있잖아."
"......"
"너가 다 두고갔어. 너가 누워있었던 병실에 전부 다 두고갔어. 유일하게 성 준이 너한테 준 팔찌는 안 두고갔더라."
"....내가?"
"아마 너네 엄마라는 사람이 그랬겠지. 우리가 너랑 같이 있는거 엄청 싫어하셨으니까."
"근데 준이 팔찌는 왜.."
"니꺼라고 생각했지 않을까. 팔찌는 니가 계속 차고 있었으니까. 나머지 선물들처럼 보관하고 있었던게 아니라."
"...어머니가 내 물건들을 다 버렸다는거야?"
"어. 그래서 그때부터 그 가방걸이는 내가 달고 다녔거든. 너 만나면 주려고."
"......."
"근데 딱 하여운이랑 부딫혔을 때, 이 가방걸이가 말썽이었어."


김태겸이랑 하여운이랑 이어지게 되는 매개체가 내게 생일선물로 준 가방걸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방걸이가 내꺼인지도 기억이 제대로 안나더라."
"....."
"당연하겠지, 너에 대한 것들도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가방걸이가 너한테 주려 했던 거라는게 기억이 날리가 있나.."
"....."
"근데 이상하게도 하여운 걔는, 내 가방걸이를 보고 눈을 반짝이더라."
"그게 무슨소리야."
"길가다가 달려오는 애한테 부딫혔어. 순간적으로 받아내느라 가방이 바닥에 쓸렸고, 그 때 가방걸이가 확 떨어졌거든."
"...."
"가방걸이도 이미 엉망이었어. 당연히 초등학교 때, 초등학교 저학년이 만든게 튼튼할리가 없잖아. 어차피 무슨 가방걸이인지도 기억이 나지도 않았어서, 그냥 괜찮다고 말하고, 갈 길 가려 했는데 갑자기 잡아오더니 근처 벤치로 끌고가더라."
"...."
"그 이후에 자기가 책임진다면서 물티슈로 다 꼬질꼬질해진 가방걸이를 닦는데 그냥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데 그렇지?"
"뭐가?"
"아까 말했듯이 하여운은 내 가방거리를 보고 엄청 놀랬거든. 그 후로는 엄청 반짝이는 눈을 하고는 내게 번호 남겨두고 가버렸어."
"....."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왜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거지..이미 너는 내가 많이 싫어졌을건데.."
"아니라니까 진짜!"


더 있다가는 땅굴을 팔 듯한 김태겸에 나는 아니라고 확신을 해줬다.
그리고는 얼른 집엣가서 내용을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점점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어. 원래 원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다가, 내가 등장하기전 주인공들 서사도 알아내야하고.. 하여운이 뭐하는 애인지도 알아내야하니까..'


"너 말 무슨 뜻인지 알았어. 이야기 해준거 고마워. 하기 힘든 말도 꺼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랑 학교 같이 다녀줘서 고마워."
"..........."
"태겸아?"
"..........아니야. 얼른 가자. 곧 어두워지겠다.."
"그래"


나는 김태겸과 버스정류장으로 나란히 내려왔다.
그리고는 버스가 올 때까지 둘 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생각할게 있었고, 김태겸을 보니까 자기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일이 있는 듯 했다.

우리는 버스에 내려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은채로 걸었다.
우리 집이 더 먼저 보이는 동네 구조 상, 나는 먼저 집에 도착했다.
우리 집 앞에 와서야, 김태겸은 생각하던게 끝난건지 내게 얘기했다.


"...설아."
"응?"
"나도 고마워."
"뭐가?"
"변하지 않아줘서.........그럼갈게"
".....야!"


김태겸의 고맙단 말 뒤에 갑자기 쪽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동시에 내 볼에서 감각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

난 아무말도 못하고 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김태겸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간다고 얘기했고,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애타게 불렀지만, 김태겸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갔다.


"....저 자식 개가 아니라 여우잖아.."


나는 멀어져서는 보이지도 않는 김태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이없어진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따라 더운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아마 내 착각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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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8-08 21:56 | 조회 : 1,82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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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im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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