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회

꿈을 꿨다.

그 꿈에서 트리스는, 로미니티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밤시중을.

그가 하는 말을 모두 따르며,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릴 자신의 운명을 증오했다. 뱀파이어들을 증오했다. 하지만 왠지 로미니티는 싫지 않았다.

그런 역겨운 기분으로 잠에서 깨자, 그의 붉은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잡무실에 있었다. 로미니티는 책상에 앉아있었고, 트리스는 소파에 누워있었다.

''어, 나 분명 침실에서 잠들지 않었나...?''

"스피네스. 물."

로미니티가 말하자 여집사가 잡무실을 나가고 2초 뒤에 물컵을 갖고 다시 나타났다. 로미니티의 손짓에 그녀는 물컵을 트리스 앞에 놓았다.

"마셔라."

주인의 명령에 트리스는 물컵을 들어 입에 댔다. 의외로 평범한 물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굉장히 목이 말랐다는 것을 트리스는 깨달았다.

'배려...해준건가...?'

트리스는 얼른 그 생각을 묻어버렸다.


ㅡㅡㅡ


그 날로부터 한 달보다 조금 더 지났다. 트리스는 로미니티의 명령대로 그의 허락이 없으면 방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매일 밤 그와 섹스를 했다.

매일 밤, 트리스의 몸은 뜨겁게 닳아올라 그에게 피를 빨렸다. 하지만 왠지 그에게만큼은 증오를 느끼기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이상한 것은, 그와 있으면 편하고 좋았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일어나면 그 둘은 서로를 껴안은 채로 일어났다. 아니면 트리스가 로미니티에게 기대고 있고 로미니티는 깨어있었다. '뱀파이어들은 잠을 안 자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미니티는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로미니티가 그에게서 아침부터 피를 빨고 나가고, 스피네스가 그의 아침 식사를 가지고 방에 들어와서 테이블을 세팅해주고는 말했다.

"오늘부터 근신이 풀린다."

"...... ...네."

트리스는 갑작스러운 좋은 소식에 잠깐 말을 잃었다. 하지만 기쁨은 얼른 가셨고, 의심이 자리를 메웠다.

'이 흡혈귀가 뭔 생각이지?'

"다음주에 연회가 있다. 너는 그곳에 참석할거다." 스피네스가 추가설명을 하자 그제야 이해가 됐다.

"제가 준비해야 할게 많나 보군요." 트리스가 대답했다. 스피네스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그는 자신의 입술 안쪽에서 피가 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까 로미니티가 키스하면서 문 것이었다.

"많지," 스피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가장 존재감이 없눈지를 공부해야할테니. 쉽진 않겠지만," 스피네스가 빈정거렸다.

"....." 트리스는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스피네스의 말과는 다르게 트리스가 준비해야 할것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없어서 트리스가 불안해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서 로미니티에게 묻자 그는 트리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넌 연회에 참석만 하고 입을 열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의자에만 얌전히 앉아 있어라."

'동물원 원숭이가 되라는 뜻인가?' 트리스는 생각했다.

근신이 플려서 지난 몇 주와 달라진 점은 성 안을 구경하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인님, 저... 혹시 오늘 성을 돌아다녀도 될까요?"

로미니티는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 층을 벗어나지 마라."

"네, 주인님. 감사합니다." 트리스가 대답하고선 얼른 이 성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해내려 노력했다. '이 층에는 뭐가 있더라.'

그러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맨몸이었다.

트리스는 출근하려는 로미니티의 옷자락을 얼른 붙잡았다가 그의 눈빛에 짓눌려 얼른 손을 뗐다. 그는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저...옷은..."

"....(피식)"

그는 짓궂은 웃음을 짓더니 (보통 로미니티가 그 웃음을 지을 때는 섹스하면서 트리스를 농락할 때였다) 트리스의 아침을 갖고 온 스피네스에게 트리스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그 옷을 준비해줘라."

"네, 가주님."

스피네스가 대답했다. 불길한 느낌이 트리스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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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2-28 15:48 | 조회 : 1,85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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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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