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전투 (1)

"-왕을 죽여라!"
"아주 찢어발겨 버리자!"

제단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인파 속의 한 사람인 나는 생각했다. 설마 이 정도로 조잡한 생각을 할 줄이야. 그냥 돌진이라고?

(아무리 거대 범죄 조직 흑월이라고 해도 용사들과 시민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왕을 죽인다? 그것도 기자들이 있는 앞에서? 이 무슨 바보 같은 행적이냐.)

왕위를 노린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 그 자리가 인정받을 리는 없고, 누군가의 의뢰라고 해도 그건 너무 무모하다. 차라리 의뢰인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안전하게 몸을 사리는 편이 더 안전할 텐데.

깽판을 친다던가, <유메니티>의 평판을 낮춘다는 일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보다도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 작전을 생각한 녀석은 어떤 계획을 생각해놓고 이런 일을 벌인 거지? 그것보다, 애초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력은 준비가 되어있는 건가?"
"-시민들은 모두 대피하라! 범죄자들의 습격이다!"

주위에 있는 적의 전력을 둘러본다. 모두가 왕의 말에 혼란한 와중에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훤한 낮에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의 망토를 쓴 자들이 여럿에, 본래라면 무기를 들지 않을 수상한 자들 또한 몇십 명 가까이는 된다.

"-크헉!"
"으아아아악!"
"폐하의 명령이다! 경비와 기사들은 모두 범죄자 녀석들을 공격해라!"

주위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 몇 명이 수많은 자의 기습 공격으로 힘없이 쓰러져 간다. 뒤늦게 왕의 명령으로 전투가 시작되기는 하지만, 대체로 아직은 흑월의 조직원들이 더 유리한 모양이었다.

으음, 아무래도 <유메니티>의 경비병들과 기사단에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수하들의 전력은 문제가 없을.... 려나...? 무슨 생각인지 지금은 집중적으로 기사들과 경비병들을 공격할 뿐, 시민들은 건들지 않는 상태다. 전투에만 집중하겠다는 건가.

단지 확실한 건, 무기가 있는 자들은 무조건 공격 대상이라는 점. 거기에 그들은 실제로 이 나라의 왕을 죽이려는지 몇몇은 제단 쪽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꼬리조차 잡기 힘들다는 조직 '흑월'이 이런 무모한 방법을 택할까?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알 수가 없구만, 이거."


★★★


"-왕을 죽여라!"

그 말을 듣고 그 장본인의 주위에 있던 이 나라의 수호자, 지난은 혼란에 빠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대에 이런 기습이 들어온 거니까. 그토록 원하던 상대가 직접 몸을 드러냈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길한 징조이기도 했다.

(그만큼 신중하게 모든 걸 판단했던 조직인 만큼, 이러한 일을 저지른 이유가 있을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잠시 행동을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폐하의 곁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은 깊숙이 자리 잡았다. 우선 여기에서는 왕의 신변이 가장 중요했다. 그의 곁으로 달려가면서 그에게 크게 외친다.

"폐하! 우선 옥체를 보존하시는 편이-"
"아니, 무엇보다도 지금은 여기의 시민이 모두 대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난, 다시 한번 <확성> 마법을 걸어주게!"

자신이 오직 그의 신변만을 생각했을 때, 그는 이미 다른 자들의 목숨까지도 신경 쓰고 있었다. 약간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면서도 지금이 긴급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에게 멀리서 <확성> 마법을 건다.

"시민들은 모두 대피하도록 해라! 극악한 범죄자들의 습격이다!"
"뭐라고! 그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체를 알지 못하고 그저 퍼포먼스인 줄 알았던 시민들이 왕의 긴박한 목소리에 그제야 지금 이 상황을 인지한 듯 경악의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나머지 서로서로 밀면서 이 자리에서 끈질기게 벗어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꾼으로 인식이 되어 결국은 그들끼리의 다툼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은 살아남기 위해.

"경비병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녀석들을 공격하거나 시민들을 보호하고, 기사단은 적극적으로 이 방해꾼들을 배제해라! 모두, 빨리 움직여라!"

그러면서 신속하게 최선책이라 생각되는 방법으로 전력을 분산시켜 놓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많은 적은 무기를 들고 제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이미 지난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왕의 곁에 온 상태였다. 곁에는 그와 같이 있던 이니가 있었다.

"저.... 길드 마스터.... 이게 무슨...."
"큭, 이렇게 다시 재회할 줄은 몰랐는데.... 우선 너도 대피하는 것이 좋을 거다. 용사 일행의 곁에 있어줘."
"저어, 하지만-!"
"시간이 없다, 이니! 재빨리 대피해!"

보기 드문 그가 진심으로 낸 분노에 이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용사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아직 저 조직원들이 계단 쪽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손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

"폐하, 아무래도 이번 사태를 일으킨 조직은...."
"아아, 말하지 않아도 되네. 이미 알고 있네. 아마 우리가 쫓고 있던 거대한 범죄 조직 흑월이겠지. 하필 타국에서도 집중하고 있는 이때 이런 일을 벌이다니, 당장이라도 처리해야겠군."

그도 왕의 말에 격하게 동참하는 바였다. 타국의 기자들도 있을 터인데 이런 짓을 하다니. 아무래도 단단히 미친 듯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민들의 축제를 망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길, 맡은 직급이 이거인지라 시민들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겠군. 아무래도 다른 모험가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이런 상황을 대비한 건 아니지만, <모험가 길드>에서 이미 많은 모험가에게 흑월을 공격하는 데에 협조를 받아놓은 상태다. 보수라는, 그들이 가장 원하는 보상이 있는 한 그들은 열심히 움직여 줄 것이다.

"폐하, 모험가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 싸워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보통 모험가들이 이런 내부사정에 간섭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보수에 관한 문제도 있고, 나중에 어떠한 클레임이 들어올지도 모를 텐데. 짐으로서도 그러고 싶다만, 이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모험가 길드>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조직이다.

단지 국가로서 의무적으로 <모험가 길드>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여러 정보를 받을 권한 정도는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국가가 어떻게 따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 점은 다른 나라도 같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모험가 길드> 쪽에서 내온 의뢰라는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물론 보수도 미리 그들과 상의해서 정해놓았죠. 지금은 긴급 상황이므로 일을 먼저 받고, 의뢰가 나가게 되겠습니다만, 상관없겠죠."
"그렇게 말한다면 알겠네. 곧바로 말하도록 하지."

지난의 자세한 설명에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한 다스 에이나 폴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다시 고개를 민중들에게로 돌린다. 전체적인 흐름을 지도자가 파악하여 명령을 내린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이 고지에 계속 있다면 왕을 지키기에도 쉬울 것이다. 길이 하나로 된 이상, 맨 앞에서 철저히 부숴버리면 그만이니까.

(현재 기사 단장은 왕녀님들의 신변을 맡은 것 같고, 이제 남은 건 폐하의 말씀이 끝나면 곧바로 대피시키는 일뿐이다. 흑월의 남은 병력은 우리가 병을 지휘해서 해치우면 될 뿐이고. 그러면은 곧장-)

다른 위험 요소가 있나 주위를 둘러보던 지난은 문득 바로 자신들의 위에서 무언가의 소리가 나는 것을 듣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들은 것이니 틀림은 없을 터. 이건 분명 그 날 밤과 같은....

"자아, 그렇다면 다시 한번 더 내게 <확성> 마법을...."
"-위험합니다, 폐하!"


-콰아아아아아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위치한 제단 바로 위의 건물이 폭발하였다. 전에 직접 그가 맞아본 적이 있었던 흑월이 설치한 폭탄일 것이다.

문제는 폭발의 잔해뿐만이 아닌, 아예 폭발로 부서진 건물 하나가 통째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지난은 몸을 날려 다스 에이나 폴로를 제단의 계단 쪽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그런데도 너무나도 거대한 건물의 파편이었기에 완전히 제대로는 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주륵, 왕의 이마에 긁혀서 생긴 상처가 나버린다. 그것과 더불어 계단에서 굴러 생긴 여러 상처가 그의 몸에 새겨진다.

"괜찮습니까, 폐하? 저 거대한 건물 탓에-!"
"아, 아니. 괜찮네. 만약 자네가 아니었다면 허무하게 깔려 죽었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다행히 자비 깊은 지도자의 말에 안도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굴러떨어진 이곳에 여러 범죄자가 무기를 들고 포위하고 있다는 것.
설상가상으로 경비병들과 기사들이 이곳으로 오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용사는 어디로 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군.)

다행히 지금은 그의 곁에 지난이라는 강력한 실력자가 있지만, 전에 이니를 지켰을 때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그때는 범죄자들이 직접 자신을 공격해왔지만, 이번에는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왕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폭파>와 같은 공격적인 마법으로 적을 쓸어버린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그러다가는 미처 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휘말릴 수도 있기에 그것도 불가능했다. 흑월에 침입했을 때의 실력자들만 있는 환경과도 또 다른 것이었다.

(거기에다 나는 아무래도 광역 공격의 조종이 서투르니,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는 주먹으로만 싸워야 하나.)

힐끔, 뒤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왕의 모습을 살짝 보면 일국의 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겉모습을 보였다. 왕관은 이미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고, 옷은 먼지들도 가득했으며, 얼굴은 여러 자잘한 상처투성이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조여오는 흑색의 포위망에 그들이 듣지 못할 작은 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오른발을 뒤로 빼며 주먹을 쥐는 포즈를 하고는 적이 언제 오든지 바로 맞받아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폐하, 아무래도 저희는 포위된 것 같습니다. 비록 제가 사활을 다해 싸우기는 할 테지만, 어딘가로 대피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몸 상태는 어떠신지?"
"-쿨럭! 어, 으음. 다행히 다리는 다치지 않은 것 같네만.... 약간 이쪽 팔이-"
"그러시다면 달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군요. 그러시면 부디 이곳에서 곧장 대피하실 수 있나요?"

사방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는 지난. 그런 와중에도 어딘가 빈틈이 있을까 몇 번을 자세를 고쳐가면서 적들을 견제한다.

"어, 어흠! 그렇다고 해도 사방이 적인데 빠져나간다고 해도 위험할 것 같아서 말이다."
"아마 제가 알기로는 폐하께서는 예전에 검술을 배워보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검을 쥐여 드리면 가능할까요? 그게 아니라면 가장 운용이 쉬운 도끼라든지 말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 중에는 단검, 도끼, 검 등의 다양하고도 위험한 것들이 존재했다. 그 말인즉슨, 많은 이들을 한 번에 상대하면서도 그는 저 무기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약간 상처가 날 수도 있지만, 몇 개 정도는 빼 올 수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신다면 아무리 폐하시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아, 아니. 그래도 왼쪽 팔이 좀 아픈 것 같은 것 같은데....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따라 팔을 움직이기 힘들지도-"
"폐하는 오른손잡이시죠? 그렇다면 왼쪽 팔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나이 정도는 죽기 살기로 극복하시면 될 겁니다."
"어? 어.... 그렇군.... 자네 말이 그렇다면야."

지난의 묵직한 태도에 기가 조금 죽는 이 나라의 왕. 그러나 지금은 생활이 걸린 사태이므로 다시 진지하게 주위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서로 간의 대치되는 상황.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적은 더욱더 인원이 많아진다. 지난이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왕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그로서도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왕녀들을 지키고 있는 기사 단장은 현재 전력 외, 경비병들과 기사들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거기에 저들은 시민들을 지키는 만큼 병력이 더 소비되겠지.)

현황 상황을 분석해, 가장 빨리 이곳으로 올 수 있을 만한 인원을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결론적으로 모험가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걸 기대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 와중에 용사 파티는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곤란하게 만드는군. 나 혼자라면야 <전이> 마법으로 금방 대피할 수 있다지만, 폐하는 다르니까.)

이런 막장인 짓을 저지를 정도로 무모한 집단이다. 지난이 어딘가로 <전이> 시켰다가는 그는 저항도 못 한 채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럴만한 인원이 없다면 전면적으로 왕을 모시고 저들을 뚫고 간다는 작전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상황으로는 기대해볼 만한 방법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은 것일 뿐.

그러다가 문득, 몇십 명의 인원 정도가 모이자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갑자기 한꺼번에 그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이제 충분히 지원군이 모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자아, 모두 저 길드 마스터의 뒤에 있는 겁쟁이를 처리하자!"

많은 인원이 위험한 무기들을 들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전혀 원치 않았던 지도자. 평소에도 눈엣가시였던 그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이 고조된다.

"쳇, 바로 오는 거냐! 좋아, 해보자고!"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휙, 맨 처음 들어오는 칼날을 눈으로 보고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먹을 들이대면서 하나하나씩 차례대로 급소를 노리기 시작한다. 곧바로 눈앞의 한 사람의 턱을 강하게 가격한다. 그 반동으로 남자는 뒤쪽으로 넘어가 달려들던 여러 사람의 진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거기에, 뒤에 시민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조금 약하게 마력을 담아서-)

"-<폭파>!"
"크, 헉...."

곧장 겹쳐져 있는 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이대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연기가 퍼져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으로 빠져나온 범죄자들을 향해 순식간에 <가속>하여 이동한다.

하나의 진로에 여러 명의 그림자가 놓여 있었다. 더불어 발에 대한 무리는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힘이 담긴 <가속>된 발차기가 일직 선상에 놓여 있는 그들을 노리고 있다.

"-너, 어딜 가려고?"
"!!!!"

파앙, 하는 평범한 발차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극악한 소리가 나온다. 더불어 목이 꺾인 모습과 함께 어디선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바로 옆의 범죄자에게 극도의 공포를 주었다.

왕에게로 가고 있던 진로를 멈추고는 곧바로 검을 그가 향해있는 곳으로 바꿔 잡는다.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는 아예 눈을 돌리지도 않은 채, 이 현상에만 집중한다.

"제, 젠장! 이 썩을 놈의 자식이!"
"...너보다는 아닐 텐데?"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검이 닿을 만한 거리까지 오면 바로 검을 휘두른다. 노리는 쪽은 급소인 그의 목이다. 급소를 노리는 것은 절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곧장 죽여버리려면 이쪽이 최선이었다.

"-죽어!"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지난은 완벽하게 살짝 뒤로 물러나면서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 후의 대책을 짜놓았다. 순식간에 자신의 자세를 찌르기로 바꾼 후에 심장을 노려 <창격> 마법을 발동하여 위력을 더한다.

이 공격은 예상치 못했는지 지난이 일그러진 표정을 띄우며 다급한 듯이 외쳤다.

"자, 잠깐!"
"이미 늦었어!"

푸확, 붉은 선혈이 칼끝을 타고 흘러내려 자신의 손까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막 만들어진 철과 같은 금속 냄새가 나는 것과 손맛이 있었다는 것에 흥분을 느끼며 심장에 꽂힌 엉망진창인 검을 빼낸다.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가 자신의 활약에 놀라는 표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그런 성취감에 뿌듯해하고 있을 무렵, 왕이 있을 오른쪽에서 나머지 한 명이 더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허술하구먼, 이 나라의 길드 마스터란 작자는. 고작 이런 장난에 쉽게 속아 넘어가다니. 경비 부문장이 당했다길래 경계했건만, 생각보다 실망이야. 결국은 왕을 지키지도 못했군."
"너, 너...!"

주위에서 놀라는 같은 직종의 쓰레기들보다 자신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우월감이 생긴다. 밑에 죽어있는 시체가 싸늘히 죽어가는 모습이 그 기분을 더욱더 높여준다.

"자아, 우리들의 임무는 끝이다. 그러면은 곧장-"


-푸욱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날카로운 무기가 아닌 장갑을 낀 손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기습이라 옆의 시체와 같이 단번에 쓰러지고 말았다.

"뭐, 뭐냐. 도, 도대체 어떤 녀석이 나를...!"

아직 숨이 붙어있는 동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찌른 장본인을 확인한다. 누워서 억지로 고개만을 돌린 거라 그 처절함이 더욱더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넌 내가 분명히 처리했을 텐데...!"
"고작 이런 장난에 쉽게 속아 넘어가다니. 생각보다 실망이야. 그저 <영사> 마법과 <매료> 마법, 이 두 가지를 쓴 것뿐인데 말이다."
"그, 그렇다면 이 녀석은-"

적이 자신의 바로 위에서 쳐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고개를 시체가 있는 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심장을 찔러 눈에 초점이 없는 비참한 표정의 시체가 있을 뿐. 곧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알려주고 싶은 것처럼 현실적이고 무기력한 자다.

"뭐, 어차피 쓰레기들인 너희들에게는 같은 직종의 자를 죽여봤자 별생각도 안 들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애초에 너희들과 놀아줄 정도로 지금의 나는 한가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좀-"
"시, 싫어-!"


-콰직


어차피 눈을 감을 거, 몇 초라도 더 빨리 보내준다.

이제 그가 들고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그저 쓸모없이 날이 무뎌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 한 자루의 검을 그는 가볍게 들더니, 저 멀리 왕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 범죄자들을 향해 던졌다.

예상과는 다르게 고개를 돌려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검을 피한 그림자였지만, 애초에 그는 모든 적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만약 지금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전투 상황이 아니었다면 생포도 염려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어렵다면 죽이는 것이 더 편하다.

"<위치 변환>."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날아가던 검은 그의 마법으로 인해 아예 U자로 돌더니, 검은 망토의 후드 쪽으로 살벌 나는 효과음과 함께 꽂혀버렸다. 얼굴이 음영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름 끼치는 높은 목소리가 비명을 질러대는 것을 보니 심각한 고통을 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여러모로 시끄러운 소리군. 그것보다 여자였나.)

몇 년만의 고삐가 풀린 듯 범죄자들을 상대로 종횡무진으로 활동한 그의 모습에 범죄자들의 사기가 꺾여버린다. 이미 왕의 주위에는 수많은 동료의 시체들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을 정도니까. 여러모로 잔혹한 그의 방법도 영향을 주었다.

"우선.... 폐하의 주위에서 서성거리던 녀석들은 전부 처리했고.... 그럼, 다음으로 시체가 될 녀석들은 너희들이냐?"
"으윽...!"
"한마디만 하지.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온다면, 머지않아 이들과 똑같은 모습이 될 거라는 건 확신해두겠다. 정도의 차이지 즉사는 당연해. 다만, 원한다면 최고의 고통을 맛보게 해줄 수도 있지."

여러모로 범죄자들에게 용서가 없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살의가 뚝뚝 묻혀있었다. 그의 진심이 강하게 전해졌기에 더욱더 그들이 접근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뚫려버릴지도 모른다. 아직은 제법 펄펄하지만, 나라도 체력의 한계가 있으니. 게다가 폐하의 존재도 있어 나름대로 위력도 조절해야 하니, 여러모로 힘들군.)

게다가 그걸로 인해 자신의 행동반경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저 멀리 경비병들과 기사들이 죽어감에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그때, 저 멀리 건물에서 여러 사람이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저건 분명하게 자신을 노리는 것이 분명할 터. <유메니티> 측에서는 준비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을 테니 확실한 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젠장.... 왕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같은 동료가 죽든 상관 없단 말이냐....! 아니, 내가 한참을 잘못 생각했군. 범죄자 새끼들은 그런 거에 전혀 신경도 안 썼지, 참.)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진심으로 곤란한 듯이 위를 쳐다보는 지난. 안 그래도 근접 전투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제는 원거리 사격, 그것도 몇십 초마다 계속 발사되는 활이라는 아주 거슬리는 패시브가 추가되었으니까.

저 멀리 건물 위라면 강력한 마법을 발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면은 또 건물이 부서져 시민이 다칠 염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두 가지 골칫거리를 동시에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에게 그건 불가능하지. 그럼, 그에 맞는 수단을 대비하긴 해야 할 텐데.)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고 무더기의 화살들이 그를 포함한 광장의 여러 곳에 뿌려지기 시작한다. 다른 시민들과 범죄자들이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살의가 가득 담긴 비참한 의지가 담긴 공격이었다.

(아, 이제는 지긋지긋하군. 이런 방식.)

화살이 포물선을 그려 이제는 서서히 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빠른 속도로 화살의 비는 평지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이제서야 많은 자가 화살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기사들뿐만이 아닌 범죄자들의 경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로.... 끝인가...."

뒤에서 자조하는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검은 외투를 입은 평범한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한 범죄자였다.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었다.

(...참으로 지겹다고. 이 뻔하게 나오는 등장 방식이 말이야!)


-파아아아!


번쩍, 하고 나오는 빛의 기둥. 그것은 거대한 광장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날아오던 화살들은 그것에 닿더니 순식간에 모두 소멸해버렸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여전히 여러모로 과장된 효과를 보이는구먼. 우리들의 용사님께서는."

모두의 시선이 빛의 기둥으로 몰렸을 때, 지난의 옆으로 지나가는 두 사람의 실루엣. 용사와 전위의 기습이나 다름없는 강력한 공격에, 그 주위에 있던 여러 사람이 날아간다. 그 덕분에 지난과 왕의 주변에는 그 두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용사의 등장! 모두 알아서 항복하는 게 좋을 거야! 혼쭐나기 싫다면 말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등장은 아니었지만, 증원군이 와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하는 지난. 그와 더불어서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한 분노가 좀 격렬하게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용사가 직접 다스 에이나 폴로에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더 빨랐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폐하. 사실 제 성검이 인간을 상대하기에는 부적합한지라.... 거기에 시민들에게 영향이 갈까 생각해 일반적인 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제 동료들에게도 무기가 없어 갖추고 왔고요. 부디 이 전투를 허용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허락하겠네. 아니, 오히려 우리로서는 바랄 나위도 없이 최고의 전력이군! 부디 부탁하네. 여기에 있는 지난 군과 같이 싸워주게나."

어느새 정신을 차려 위엄있게 말하는 왕에 지난은 아연실색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왼쪽 팔이 아프다면 징징대지 않았던가.

"그렇게 됐으니, 지난.... 씨라고 했죠? 부디 저희가 도와도 괜찮을까요?"
"아아, 예.... 제발 좀, 부탁드리도록 하죠."
"지난, 자네 그게 무슨 태도인가? 타국의 용사가 직접 싸워준다는데 기뻐해야지, 그런 반응을 보여서야 쓰나. 어서 빨리 사과하게."

평소의 지난과는 다른 태도에 의아한 다스 에이나 폴로가 중재했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용사가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그에게 어느 정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뇨, 서두른다고는 했지만 아무런 잘못 없이 이 장소를 떠난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 결과, 지난 님께 큰 피해를 드렸으니까요. 그보다 이거, 지난 님의 검을 준비했습니다. 아무래도 딱 맞는 무기가 없이는 힘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죄의 의미로서 다스 에이나 폴로 폐하는 저희가 지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마음껏 날뛰어주십시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지만, 위급 상황에 무기까지 주면서 왕의 신변을 보호해준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것보다는 아까 전부터 신경 쓰이던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원하던 무기도 찾았으니 슬슬 저 건물에 있는 녀석들을 없애버리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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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4-04 18:18 | 조회 : 90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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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X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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