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균열(1)

“그럼, 경. 나가줘. 셰이드랑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어.”

그게 이야기가 아니라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한 세르반이였지만, 군소리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동생분은ㅡ”
“내가 안들리게 할게.”

지친 얼굴로 눈을 찡긋하는 미켈에게 더이상 따지지 못하고, 세르반이 막사에서 걸어나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자, 미켈이 동생이 누운 침대를 중심으로 무음을 위한 쉴드를 걸고 마법구에 손을 뻗었다.

“셰이드.”

곧바로 셰이드가 응답했다.

[…아, 클라우드군. 거기 어딥니까?]

“제가 알려드릴 의무가 있습니까?”

[‘그’집단이군요. 갑자기 왜 이리 반항적으로 변했으려나요. 뒤늦은 사춘기?]

“닥치세요. 그쪽은… 그렇게 말할 권리 없어요.”

미켈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답했다. 그걸 알듯 모르듯 셰이드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을 지켜온 사람으로서요.]

“내 동생 아프다는 거. 알고 있었죠?”

더이상의 헛소리는 필요 없다는 듯, 곧바로 흐름을 끊었다. 대신 차분한 어투로 그를 추궁했다. 감히, 말이다.

[흐음. 그건 또 어디서 알고 왔대요. 아, 맞다. 집단이랬죠?]

‘개X끼. 진짜 망할 놈.’

일말의 기대마저도 꺼뜨려버리는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감정을 억누르듯 입술을 짓이겼다. 미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여린 살을 세게 쥐었으면, 푸른 피가 흘러나오는지도 모른채.

“내가, 정말 죽어버리기를 바래요?”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입안에 응축된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무언가를 꾹꾹 눌러씹는 소리였다. 참고 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분노와 죄책감에 휩싸인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그래, 그 눈에 비치는 건 집단의 망할 사람들과 제 동생 뿐이겠지.

[하.]

셰이드가 짧게 웃음지었다.

‘죽어? 네가? 그런 거, 불쾌하잖아.’

[보자보자하니까, 내가 우스워보여요?]

“아니요, 불쌍해보입니다. 이를 어쩌죠? 제가 죽으면 더 비참해지겠네요. 갖고 놀 인형이 사라져버리잖아요?”

[클라우드 군.]

“당신이야말로 내가 우숩습니까? 인형 행세 해주니 좋아요?”

[미켈.]

“당신은 내 몸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의지는 가질 수 없어요. 내가 죽어버리면 당신은 죽은 마리오네트만 안고 서서히ㅡ”

[미켈 클라우드!]

“뭐요!”

비명을 질렀다. 미켈로서는 비명이였다. 눈물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얼굴이 파리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렸다.

죽고싶다. 이 순간만큼은 동생을 위해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뭘 위해 살았겠어.

셰이드는 내가 죽지 못하도록 계약을 맺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죽으려 할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처럼, 계약 조건을 내밀었다.

-
“대신 미켈 클라우드 군이 스스로 죽는다면, 당신 동생도, 이 조잡한 집단도, 몰살입니다.”
-

나는 죄를 지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의 기억은 실험실이였다. 어둡고 어두운 지하에서 손발이 묶인 채, 하늘 위에서 내리쬐는 등불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그리고 온몸을 찢기는 고통을 느끼다가 몇마디의 욕설이 들리고, 조용해지는 것.

내가 아는 세상은 그게 다였다. 나를 아프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상. 아픔을 제외한 그 어떤 감정의 형태는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공복감도.

내가 아마 5살이 되던 해였을 거다. 이유없이 죽을 듯이 맞았다. 그 다음날도, 그 그 다음날도. 나를 때리던 금반지를 낀 남자는 가주님이라 불렸다. 그는 나의 아버지라고 한다.

아, 아버지라는 건 집행자구나.

난 그런 인간이 가족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실, 가족의 의미조차도 몰랐기에.

눈을 감았다. 화가 났다. 처음 느껴보는 제대로된 감정이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아버지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때리러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손대러 오지 않았다.

새빨간 액체로 물든 그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을 뿐이였다.
그리고 그 액체가 나에게도 범벅되어 있을 뿐이였다.

더이상 손발을 묶던 족쇄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걷던 것을 흉내내듯 비틀비틀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누워서 기어갔다. 처음으로 발에 닿는 카펫의 감촉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러다가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발에 유리조각이 박혀있었다. 새파란 액체가 내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조각을 빼냈다. 내 손에서도 파란 것이 흘렀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쓰러져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내 몸은 공중에 있었다. 길다랗게 내뻗은 나뭇가지가 온몸을 햘키고 지나갔다. 바닥에 몸뚱이가 내동댕이쳐진 것을 느끼자, 이대로 일어나고 싶지 않아졌다. 그런 내 의지와는 다르게 신음이 잇달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사실 멀리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내게 팔을 뻗었다. 금반지가 없다는 사실에, 맞아도 많이 아프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데, 다시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이번에는 내가 한게 아니였다. 대신 그의 넓직한 품에 안겨들려 있었다.

“…찮아.”

중얼거리듯 말한 그가 부드럽게 내 정수리를 쓸었다. 피곤에 찌든 내 몸은 다른 사람처럼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청색은 내 보호자이자 아버지가 되었다. 처음으로 사랑과 행복을 느꼈다.

멍청하게도, 그 감정 놀이 속에 싸여서 현실을 보지 못했다.

실험실에 가끔 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이래저래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나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염원은 이루어질거다.”

그들을 잊고 있었다. 나의 옛 아버지와 한편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쓰러져있는 다크엘프 소년을 봤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들이다.

그리고 너무 늦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당신이, 뭘… 뭘 아는데.”

[…….]

침묵이 흘렀다. 셰이드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열었다.

[베키시가 그쪽으로 갔습니다. 금방 도착할거에요. 당장 탑으로 복귀하십시오. 오늘 일은 눈감아드릴테니.]

“…동생은요.”

잠긴 목소리가 갈라져나왔다. 셰이드는 애원하는 듯 두손을 그러모은채 달달 떠는 미켈을 향해, 선고를 내렸다.

[안됩니다.]

* * *

“너 상태가 왜 이래?”

베키시가 당황했다. 평소처럼 미켈의 뒤통수를 살짝 툭 치면서 달려들어왔는데, 미켈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체처럼 두 눈동자가 검었다.

“…베키.”
“응, 미켈, 나야. 대체 어떤 빌어먹을 작자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그게 가능한 놈은 별로 없겠다만.”

항상 그랬듯 종알거리는 베키시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하하.”

미켈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땅을 짚을 힘조차 없는지 몸이 자꾸만 아래로 기울어졌다.

“세르반 바크! 밖에 있지?”

베키시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챈 세르반이 막사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경악했다.

“미, 미켈님?”
“…어.”
“빨리 얘 좀 부축해봐. 보다시피 지금은 내 키가 이래서.”

세르반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나와 미켈을 부축했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몸을 지탱하며 세르반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셰이드님 때문입니까.”

그의 물음에 베키시는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고, 미켈은 고개를 숙였다.

“나, 쉬고 싶어.”
“셰이드님 때문이냐고요.”
“경ㅡ”
“하, 진짜.”

답답한 자신의 주군을 물끄럼히 보다가, 세르반이 그의 여린 허리를 잡아 들어올렸다.

“무슨…”
“계속 숙여서 부축하기 힘들어서요. 키 차이가 너무 나잖아요.”

베키시가 얼굴을 피고 풉, 웃음을 터뜨렸다. 탑의 공주님이 기사님의 품에 늘어져있었다.

미켈은 희미하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기사를 응시하다가 눈을 감았다. 지쳤다.

그가 잠들자 베키시가 세르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텔레포트할거야. 울렁거릴 수 있어.”

혹여나 미켈이 깰까 봐 속삭이는 그녀의 모습에, 세르반이 작게 웃었다. 자신의 작은 주군의 곁에는, 그만 있는 게 아니였다. 그걸 깨달으면 좋을텐데.

그 위치에 서 있었을 뿐인 그에게 짊어져 온 무게를, 함께 받쳐줄 사람이 있다는 걸.

* * *

아이가 눈을 떴다. 백옥같은 하얀 눈이 주변을 훑었다. 대조되는 흑색 피부가 눈에 띄였다.

‘……형님.’

커튼이 펄럭거렸다. 달이 커튼을 뚫고 비스듬히 몸을 비추었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미워하는 나의 어린 형님.

나는 어쩌면 좋을까요.

가볍게 눈을 감았다.

“욱ㅡ”

목구멍이 무언가로 꽉 막혔다. 아이가 잘게 떨리는 손으로 제 가슴깨를 두드렸다.

“허억, 우욱ㅡ, 하.”

쿨럭.

시커먼 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심장 박동이 미친듯이 빨라졌다. 몸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아파.

왼쪽 탁상 위의 통신기기를 누르려 손을 뻗었지만 괜스레 침대에서 미끄러졌다.

“아흑ㅡ”

형님, 아니 아우님.

“끄흐으.”

망할 자식.

“더, 앞당겨야겠습니다.”

하얀 장갑 위에 알약이 놓여있었다. 손을 옴싹달싹할 힘도 없었기에 흐려져가는 초점을 겨우 맞추며 그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손의 주인이 피식, 웃었다. 그가 알약을 입안에 털어넣고는, 머금고 녹였다. 두 입술이 맞닿고, 아이의 입안에 약이 흘러들어갔다.

“큭, 켈룩.”

사레가 걸린 듯 몇번 기침을 하고 난 아이는 아이가 아니였다. 골격이 굵어졌고, 길게 뻗은 머리카락은 허리깨까지 와있었다.

“꼴이 우숩네요.”
“하아, 너…”
“이제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겠는데요. 너무 오래 쉬셨습니다. 언제까지 꼬맹이로 아양떨고 있을겁니까? 13살은 무슨. 그 몇배는 먹어놓고.”
“…하!”

코웃음을 쳤다. 상대방의 녹빛 눈이 꿰뚫듯 실소하는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에게 벅차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을 부여했습니다. 저희 쪽도 인내심이 넘쳐나는 건 아니랍니다.”
“이 시건방진…!”
“당신은 제 주군이 아닙니다, 아를로. 적어도 지금은 말이죠. 녹턴 부장이라 해주시면 좋겠는데.”

밉살스러운 표정이였다. 저런, 개 같은 자식. 말 그대로다. 윗선의 개.

“원래 힘만 회복하면 너같은 건 한 죽거리도 안되는데 말이지. 건방진 놈.”
“칭찬 감사합니다.”
“닥… 시끄러워, 빌 녹턴.”

닥쳐, 라고 말하려다가 바꿨다. 마음같아서는 그 입 여물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을 수 밖에. 일단은 분하지만 저 놈이 상위다.

“그래서, 날 또 어쩌려고? 8년 전처럼 굴리기라도 할거야? 이번엔 뭔데, 암살? 잠입? 아니면 도둑질이라도 해드려?”
“그건 제가 말씀드릴만한 얘기는 아니로군요.”
“아, 그럼 넌 뭐하러 온 건데? 나 데리고 오는게 전부였으면 네가 움직이는 건 좀 무리 아닌가?”
“무리죠. 그걸 무릅쓰고 당신을 이렇게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윗대가리들 명령이겠지.”
“바로 맞췄습니다.”

아, 정말이지.

짜증나는 새끼.

“일단 따라오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싫다면?”
“그럼 조용히 여기서 뒤지시죠. 약해진 당신따위 현재의 제겐 별로 힘뺄 상대가 아니니까요. 그러고보니 힘은 아직?”
“아직은… 다크엘프의 성유물만 찾으면 되는데 말이지. 왠일로 형님이 날 찾아온 걸 보면 그 성유물 때문인 것 같은데. 쉽게 내줄 순 없지 않겠어? 명색이 관리자이자 유일한 주인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자, 빌은 멍청한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왜, 주인이라는 사실에 놀랐니?

“당신이… 형님이라고 부를 상대가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야 이 개새……”
“풉ㅡ”

저 자식이, 끝까지 시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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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1-08 21:16 | 조회 : 930 목록
작가의 말
하젤

즐독합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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