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4.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길은 여전히 존재하였으나 결코 나아가는 쪽은 못 되었다.

처음부터 길이 잘못 되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걸어간 것인가.
그때 남자가 건넨 반지를 받지 않았으면, 아니 그 전에 교통사고 난 이를 만나지 않았으면 방송에 나가지 않았으면 지금보단 낫게,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도 아니고 내가 현실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총상을 치료했다면 내 길은 더 높을 곳을 향해 있었을까.


이 길은 변함이 없었다. 더 떨어지지도 않고 높아지지도 않는다.
이 길은 변함이 없이 아프고 상처입고 차갑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프고 더 상처입거나 더 차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고 상처 입을 경우도 없고 혹은 따뜻해지지도 않을 테지만.

변화가 없다는 것이 더욱 두렵게 다가왔다.
더 늦게 떨어졌으면, 더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면 아직까지도 추락하고 있을까.

차라리 그게 더 나은 것도 같다. 적어도 내 행동에 대한 작은 책임의 변화를 볼 수는 있으니.

이와 같이 반복되는 우울한 곳을 거닐며 살기는 나락보다 끔찍했다.
내가 길을 가는 목적이 아니었다.
이건 내 길이 아니었다.
이 길은 잘못되었다.

뒤돌아봤다.
이성이 아닌 발이 먼저 움직였다. 뒤를 보고 정신없이 뛰었다.


“아-.”


잘못되었다. 이미 이 속에 갇혀 버렸다.
영원히.
이 끝없이 이어진 길속에 갇혔다.
갈 곳이 없었다.
뒤돌아서 걸어봤자 전쟁 속이었다.
앞으로 걸어도 전쟁 속이다.


미소를 지었다.
‘…?…’

무슨 뜻이었을까.
나도 모르겠다.


주변에는 나무가 보였다. 분쟁 지역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숲은 넓고 들짐승들이 많기에 사람들은 그곳을 가기를 꺼려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인 숲이다.

내 길은 없었다. ‘길’은 그저 정해진 굴레였다.
비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뿐이다. 내가 숲으로 간 건.



‘길’ 위에서 나‘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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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6-24 11:41 | 조회 : 76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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