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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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했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다시 의료용 도구들이 담긴 가방을 둘러메고 움직였다.
눈에 보이는 곳부터 차근차근.

날카로운 것을 밟아 발바닥이 찢어지고 상처가 난 남자를 돌보았다.
나는 몇 바늘 꿰매주고 그 부위를 잘 감싼 다음 다른 곳을 살폈다.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 피부병을 앓는 경우가 많았고 그 병을 방치하고 잘못 두어 더 악화되서 죽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항상 살폈다.
여느 때처럼 빠르고 신중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바뀌더니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자제하면서 각자 자신의 거처나 그도 없으면 더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 주변에서 물러났다.
나는 환자를 봐주는 상태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치료를 받던 환자조차도 눈치를 채고 재빨리 발을 절뚝거리며 뛰어갔다. 나 또한 수상한 낌새에 서둘러 가방을 쌌지만 늦었다.

그들은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번에는 굶주린 이들이 아니었다.
질 나쁜 이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이 지역 사람답지 않게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몸도 좋아 보였다. 허리춤에 꽂아 넣은 무기들 또한 상질의 것들이었다.
총.
총은 이곳에서 보기 힘든 무기였다.
대개 가진 것이 많은 이들만이 이것을 사고 사용하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가지기엔 과분한 무기다.
몸이 얼어붙었으나 그래도 무리해서 움직였다. 그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갖고 있는 건 다 내놔.”

나는 가방을 열어 치료도구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저 웃으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칼이나 총 따위로 사람들을 협박하며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쩌면 생명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들까지.
나는 가진 것이 없음에 감사하며 조용히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어디 가?”

그는 내 머리채를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른 것을 요구하려는 모양이다.
그들은 사치를 부리고 있다.
생존에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누리려고,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려 든다.

이 길은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 더러운 흙탕물들도 많고 뱀도 많고 돌덩이들도 많았다.
그래 잠시, 잠시 큰 물구덩이에 빠졌던 거야.
어차피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다소 취지는 달랐으나 내게서 반지를 다시 거두어간 그 남자와 ‘사랑’을 하였으니.

그때 내가 바라던 것은 ‘사치’였고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생존’이다.


금방이다.

그날 밤은 유난히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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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4-16 13:57 | 조회 : 1,37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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