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악몽











다행히 미어스 저택으로 가는 동안 더 이상 마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갈까요?”

란슬롯이 해운을 돌아보며 웃어보였다. 주변은 울창한 숲이 군림해 있었기에 위험했지만 이 녀석이라면 믿을 만 했다.

어차피, 마물이고 인간이고 나발이고, 전부 통조림으로 썰어버릴테니까.

“그러죠.”

해운이 답하자 란슬롯은 우수에 찬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치며 명령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간다!”

“옛!”

역시, 1기사단의 수석 기사단원..!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엄청난 카리스마군. 과연, 수석이라는 말이 그냥 붙은 게 아니였어.

해운이 아직 말에 앉아있는데, 수사관들이 우루루 말에서 내려와 해운에게 몰려들었다.

“용사님! 오오, 이 흑발은 마치 아름다운 밤의 어둠을 그대로 때다 박은 느낌이군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전설의 드래곤과 친척 사이라는 게 정말입니까? 정말 눈이 세로로 찢어질 수 있는 건가요?”

처음과 비슷하게도 온갖 찬양과 질문들이 쏟아져 내렸다. 해운은 조용히 말에서 내렸다. 침착한 표정이였지만 사실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다.

‘부담스러워..!’

나를 찬양하는 거야 좋지, 좋고말고! 그런데.. 심하잖아! 이것도 중증이야.

“그 빛나는 머리카락이라도 한올..”

아아악, 내 머리는 또 왜?!!

“용사님, 충분히 잘생기신 얼굴을 구기시니 더 잘생기..”

아니 좀.. 하... 빡치네.

“작작 좀..”

“꺼져.”

결국 못참고 한마디 하려는데, 옆에서 란슬롯이 차갑게 말했다. 그 한마디로 모든 수사인원들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아니, 실은 얼어붙었다는 말이 맞는 말일테다. 순간 찬바람이 온몸을 감돌았다.

“죄.. 죄송합니다..”

수사인원들은 반사적으로 사과를 내뱉고 하나둘 꽁무니를 뺐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공포가 저려있었다.

무서운 녀석.

내가 란슬롯을 올려다보자 그는 나를 보며 산뜻하게 웃었다. 저 맑은 웃음이 더 소름 돋게 만드는 또 하나의 근원이 아닐까.

“..마테스 경도..”

“아, 예.”

“가서 쉬세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주실래요. 심하게 무섭거든요, 나.

하지만 그걸 무어라고 알아들은 건지 란슬롯은 헤벌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거 아니라니까. 너 걱정해주는 거 아냐.

“용사님은 상냥하시네요.”

이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웃음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뭐,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건 내 타입이 아니니까.

“뭘요. 힘드실텐데 어서 들어가세요. 벌써 사람들이 막사까지 만들어 뒀네요.”

“아, 그럼 막사도 3인용이니 저와 함께..”

“아뇨, 괜찮습니다.”

그건 절대 싫습니다. 네버 에버! 나는 출발한지 하루만에 죽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그냥 여기서 보초 서겠습니다. 그게 마음이 편해서요.”

어느 막사에서 자든 간에 이 녀석이 따라올 것만 같아서 나는 그냥 밤을 세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저도 같이 보초를..”

“아뇨, 제발 주무세요. 제발요.”

내가 애절하게 두 손을 모으자 란슬롯의 얼굴에 살짝 냉기가 스쳤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막사로 들어갔다.

“...”

돌아서는 그의 얼굴을, 나는 보았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지독한 괴리감과 상처가 담겨 있는 얼굴이였다.

괜히 미안해지는 걸. 그렇지만 무서운 걸 어떡하란 말야? 이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되도 안되는 변명을 싸붙이고는 다시 그가 들어간 막사를 보았다. 날씨가 차가웠고,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나는 손에 불을 캐스팅했다. 사르륵, 하고 흔들리는 불꽃이 금세 세게 타올랐다. 나에게는 따뜻한 불길이였다.

“...그래도.”

나를 도와줬으니까, 이건 보상이야.

사람이 하는 모든 것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니까. 그게 내 세계의 원칙이였으니까.

조심스럽게 캐스팅된 불을 풀이 낭자한 바닥에 가져다댔다. 보통은 불이 옮겨 붙어 막사들을 한방에 날려버리겠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

풀 아래의 흙에 불꽃의 따뜻함을 전해주는 마법. 불을 캐스팅할 때 마나 회로의 영역을 조금만 바꿔서 살살 캐스팅하면 가능한 마법이였다.

바닥이 조금씩 금빛으로 물들었다. 빛은 조금씩 더, 멀리 퍼져나가서 막사들을 모두 감쌌다. 따뜻한 빛을 내는 금빛은, 마치 반딧불이처럼 풀위에 타올랐다.

나와 함께 보초를 서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입이 살짝 벌어져서 감탄사를 연신 뱉어내는데, 그 모습을 보자 또다시 원래 세계가 생각났다.

“후..”

나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풀 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나른해졌다. 어차피 보호마법만 둘러두면 벌레가 접촉하지 못할테니 상관 없었다.

“보초, 부탁할게요.”

미안해요. 나 지금 너무 졸려서. 머리도 지끈거렸고, 온몸은 뭔가가 짓누르는 것 같이 아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마음이 아파서 그렇다고 하는게 맞을까.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란슬롯 마테스의 그 얼굴은 왠지 원래의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찌르르 해졌다.

울컥, 하고 목에서 무언가가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또다시 떠오르는 세계와 가족들, 친구들의 얼굴에 나는 돌아누웠다.

그리고, 현실자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싸맸다. 여기는 그곳이 아니야.

“아니야.”

돌아갈 수 없어.

떨어질 것 같은 눈물에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빨리 이 정신없는 머릿속을 잠으로서 백지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운이 형아!”

“오빠!”

“그래, 너희 다녀왔니?”

꿈 속이였다. 어떻게 꿈까지 이런 걸 꾸는 걸까.

그때의 나는 위태로웠고, 힘들었다. 하지만 동생들을 보며 버텼다. 악착같이 버텼다. 어린나이의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알바를 다녔고, 그 와중에 공부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외국에 나가신 아버지는 한달에 한번 돈을 보내셨지만 그마저도 푼돈이였고, 형편 역시 가난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동정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를 업신여기고 쓰레기로 보는 눈빛보다도 그 눈빛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밤이 되면 혼자 웅크려서 울고, 또다시 울다가 아침이 오면 다시 신문 배달을 위해 나가고. 그게 일상이였던 시절이였다.

사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 그래도 이 짓을 내가 하지 않으면 동생들에게 떠넘기게 될 것 같아 두려워서 살았다. 동생들의 미소를 위해 살았다.

그렇지만 지금 꿈속으로 보니 나는 제법 행복했다.

보통 사람들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그때의 웃고 있는 나와 동생들을 나는 꿈속에서 바라보았다.

더 잘해줄걸. 더 웃어줄걸. 더, 더... 지금 후회해봤자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고, 더 이상 저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겠지.

“잘 있을까.”

마지막으로 웃음짓는 동생들을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꿈이 환상처럼 자연스럽지만 매끄럽게, 유리조각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결국, 나혼자 짙은 어둠속에 남은, 지독한 악몽이였다.

3
이번 화 신고 2020-02-23 19:07 | 조회 : 1,152 목록
작가의 말
하젤

저 연재 했슴다! 약속 지켰다구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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