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거 육아물이였나



구슬같이 투명한 보라색 눈이 커졌다가 오므려졌다.

이제 3살을 먹은 아클레인은 자신을 마주하고 서있는 거무칙칙한 남자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넌 뭐야, 또.”

꼬맹이가 벌써부터 말버릇이..

해운은 갈 길이 멀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아클레인과 눈높이를 맞추어 하체를 굽혔다.

“어..음 황자 저하. 처음 뵙겠습니다, 해운이라고 해요. 오늘부터 황자님을 가르쳐드리러 온 가정교사입니다.”

“가정교사?”

“네, 그러니까 황자님을 앞으로 가르쳐줄 사람이에요.”

“너 같은 반푼이한테 배울 말 같은 거 없어!”

반...반푼이..?

내가 반푼이라고? 대체 어떤 대화들에 노출되어서 산거야?

이세계로 오기 전 3명의 동생들을 돌보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해운은 화를 목구멍 뒤로 삼켰다.

“황자님, 그런 말은 할 것이 못돼요.”

“너한텐 돼. 아버지께서 멍청한 놈들한테는 욕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어.”

황제 이 망할 영감탱이가.. 3살짜리한테 뭘 가르친거야?!

“그건 황제폐하가 잘못 말하신 거겠죠.”

해운이 빙긋빙긋 웃으며 작은 생명체를 안아들었다.

“놔아! 이거 놔라고! 감히 누가 누굴 잡아드는 건데?”

“쉬잇, 궁에서는 조용히 하셔야죠.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쳐다보라고 하는 말이야!! 나 내려달라고!”

하아아..

해운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쉬고는 아클레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저보다 똑똑하신 황자님께서 방으로 잘 찾아오실 수 있겠네요. 미천한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챙겨 갈테니 황자님께서는 먼저 방에 가 계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휙 돌아 사라지는 해운의 모습에 아클레인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가..감히 나를 버리고 가는 거야?”

“반푼이인 저보다는 길을 잘 찾을 거 아닙니까?”

해운은 가볍게 대꾸하며 더 걸음을 빠르게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운의 목적은 황자가 다시 달려와 같이 가달라고 사과하는 것이였다. 하지만 침묵만 조용히 흘렀다.

“어..?”

해운은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클레인은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설마, 우는 건가?

다시 조심스럽게 아클레인에게 다가간 해운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도 속았어? 프흐흐..”

아클레인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치밀어오르던 화가 터진 순간이였다.

-

벌컥-

“황제 폐하!!!”

“뭔가?”

“저 사직하겠습니다.”

겨우겨우 달래서 공부는 실패로 넘기고 방에 데려다주고 온 해운의 몰골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였다.

“풋..푸하하하하! 사직하겠다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황제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되물었다.

“예. 5 황자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고 심성도 고우시나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운이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황제는 흐응..하며 콧소리를 내더니 책상에 팔을 괴었다.

“아클레인의 출생이 어떻게 되는 지 아나?”

“음..”

황족 같은 거, 놀다가 한 두번 마주친 것 뿐이고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기에 해운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아클레인의 어머니이자 나의 2번째 부인인 레이나는 아클레인을 낳고 얼마 안가 살해당했지. 아주.. 슬픈 일이였어. 황족으로서 모든 면모를 갖추었지만 후궁이였거든. 이에 불만을 가진 황후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지.”

“그건.. 유감입니다.”

“이 때문에 아클레인 역시 좋은 꼴을 못봤어. 몇 번이나 암살객들에게 노려졌지. 물론 지금도 예외는 아니라 황궁 여기저기에 내 군사들을 많이 심어뒀다.”

잠시 한숨을 내쉰 황제가 계속 말했다.

“1년 전에는 독을 마셔 죽을 뻔 한 적도 있어. 황궁 치료사들을 20명 넘게 대동해야 했던 사고였지. 그날 이후로는 끔찍하게 제 몸을 사리더군. 처음 보는 사람들은 경계하고..”

“그래서 가정교사를 멋대로 붙일 수 없으셨군요. 하지만 왜 하필 저입니까? 저보다 더 유능하고 뛰어난 교사들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꼬맹이의 일이 연민이 가긴 했다. 그 녀석의 눈에는 황궁의 모든 사람이 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저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폐하.”

그러니까 나는 더더욱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어.

“...그런가. 어쩔 수 없군.”

황제가 고개를 무겁게 저었다.

“이해하겠네. 사직하도록 허락하겠어.”

“감사합니다.”

조금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차라리 다시 놀고 먹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육아랑 안 맞는 모양이니까.

“가보도록 하게.”

해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황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작은 당김이 바지춤에서 느껴졌다.

“저하..?”

“해운, 일 그만두는 거야?”

“아.. 그게 사정이 생겨서요.”

“...다 들었어. 너도 나 싫은 거지? 그럼.. 너도 나 죽일거야..?”

작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너도 우리 할머니처럼 나 죽이려고 할거냐고오..”

보랏빛 눈에 물방울이 응어리져있었다. 죄책감이 심장을 세게 파들어왔다.

“후우..”

해운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무릎을 굽혀 아클레인을 안아들었다. 아클레인은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았다.

해운은 자신의 셔츠깃을 꾹 잡고 가슴을 파들어오는 작은 꼬맹이를 가볍게 토닥였다.

“황자 저하, 저는 저하를 죽이지 않아요. 괴롭히지도, 아프게 하지도 않을 거에요.”

“끅..흐끅..”

연신 눈물을 떨어뜨리며 딸꾹질을 해대는 아이를 보며 해운은 다시 마음을 먹었다.

“저하가 뚝 그치시면 다시 일 할게요.”

“후으...”

해운이 한손으로 아클레인의 눈물을 닦아내며 웃었다. 아클레인은 조금씩 진정해갔다.

“왜.. 화 안냈어?”

“네?”

“아까 내가 심..하게 장난 쳤으니까 분명히 화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하가 아직 어리시니까요. 어릴 땐 원래 조금씩 장난도 치고, 말썽도 부리고. 그렇게 자라는 거죠. 저도 어릴 때 그랬어요.”

덕분에 엄마한테 많이 후들겨 맞았지. 하하..

“그러니까 저하가 정말로 위험한 행동만 안하시면 저는 화 안 낼거에요.”

“..응”

아클레인이 작게 대답했다.

아, 잠깐만. 나 사직한다고 말하고 왔는데 다시 가야해? 귀찮은데..

“쿠크다스, 너 황제폐하께 말 하나만 전해드릴래?”

“예?”

“나 저하 가정교사 한다고 좀 전해드려. 나 간다?”

“저..저기, 해운님? 해운님!!!”

해운은 비통에 찬 다스의 비명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아클레인을 품에 안은 채로 밝게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프흐.. 너 정말 웃겨.”

“웃겨요? 하하”

“응. 재밌어.”

“아, 그래요, 저하. 아클레인이라고 부르려면 이름이 너무 긴데.. 아크! 아크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우음.. 아크..아크.. 프흐...”

자신의 이름을 반복하다가 작게 웃는 아크를 보며 해운은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그래.. 몇 년..만 하자. 몇 년만 이렇게 선행하면 신도 집에 보내주지 않을까?

하고 자기만족을 하며.

5
이번 화 신고 2019-11-24 18:28 | 조회 : 1,509 목록
작가의 말
하젤

대충 작가의 말을 하는 중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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