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신탁의 희생양(1)

정신없이 두드려지는 키보드 소리와 상사에게 혼이 나고 있는 신입 회사원의 울먹이는 소리가 백아엘의 귀에 들려왔다.

“이것 하나 똑바로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굽신대며 허리숙이는 그녀의 모습이 처연해 보였지만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당했었고 당연히 새로운 신입도 당해야 한다는라는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시시했다.

백아엘은 상사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다물게 하고 싶었다. 작업을 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듣기 좋은 목소리도 아니었고 그저 소음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사의 시끄러운 잔소리는 끝날 생각이 없는지 30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들리고 있었다.

결국 백아엘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위의 시선이 모두 백아엘에게 향했다. 그가 어떻게 할 것인지 호기심 어린 시선과 자신도 당했으니 신입 사원인 그녀도 당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적의어린 시선. 여러 시선을 받으며 백이엘은 상사에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뚜벅뚜벅 걸어다갔다.

“부장님.”

“응?”

백아엘의 부름에 호통을 치던 상사의 고개가 백아엘에게 향했다. 그러자 상사의 얼굴에 난감한, 곤란하다는 듯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감정없는, 높낮이없는 단정한 목소리로 백아엘이 말했다.

“이쯤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곧 퇴근 시간이거든요.”

팔에 찬 손목을 시계를 보며 말하는 모습에 상사는 기가 찻지만 백아엘을 향해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상사에게 있어서 백아엘은 천적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기계처럼 완벽히 일을 해내고 기계처럼 감정이 결여된 것처럼 구는 그는 상사가 아무리 트집을 잡으려고 해도 완변한 논리로 역관광 당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사같은 이름과는 반대로 백아엘은 상사에게 있어서 악마같은 놈이었다. 영악하지도 않았고 성실하고 유능했지만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오늘 외식은 어디로 갈까요?”

붙임성 좋고 사회성도 좋은 이해리 대리가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며 말하자 직원들은 각자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사는 아엘을 한 번 노려보고는 등을 돌려 가면서 말했다.

“오늘같은 날에는 곱창이지.”

곱창이라는 말에 혼나고 있던 신입 여직원의 얼굴이 희게 질려버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곱창을 못먹는 쪽의 사람 같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한사람 한사람 모두 배려해 줄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었다. 모든 것은 상사의 취향, 취미 위주로 돌아가고 그 아래의 직원들은 그것에 맞춰주면서 상사의 기분에 거슬리지 않게 굽신거려야만 했다.

유일하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백아엘, 그 뿐이었다.

“…저.”

자리로 돌아가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던중 옆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아엘은 고개를 돌리고는 신입 여직원을 바라봤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식으로.

“방금은 그러니까, 고마워요.”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신입 여직원은 하얀 뺨을 옅게 붉게 물든채로 말했다.

“아니요. 시끄러워서 그런거지 그런 의도로 한 것은 아니니 감사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엘은 가방에 서류를 넣고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뒤도 안 돌아보고 여직원을 지나치며 걷다 문앞에서 잠깐 멈칫하며 뒤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회식. 저는 빠집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아엘이 나간 문을 멍하니 쳐다보는 여직원을 보며 이해리 대리는 혀를 차며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신입. 포기해.”

“…네, 네?”

“저건 남자가 아니라 그냥 목석이야.”

“네? 그게 무슨.”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얼빠진 소리를 내는 여직원을 보며 이해리는 한숨을 쉬며 설명해주었다.

“아엘, 그놈 얼굴도 잘생긴 편이고 목소리도 좋잖아? 거기다 능력도 좋고. 그래서 여자가 많이 꼬였거든. 아예 대놓고 유혹하기도 했고 그랬는데 그럴때마다 백아엘, 그놈이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 그냥 사물보는 눈이었어. 그건.”

이해리 대리 또한 백아엘에게 이성적 호감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호감은 며칠이 지나 산산조각나듯이 부서져버렸다.

“쟤는 흙이나 돌이나 인간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놈이야.”

그렇게 말하는 이해리의 눈이 너무나도 쳐져있어서 신입 여직원은 반박하기 위해 열었던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어두운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은은한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지만 백아엘의 표정은 어둡지 그지없었다.

백아엘의 표정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 퇴근은 했니?

언듯 들으면 자애롭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네.”

-그럼 어서 옷갈아입고 성당으로 오렴. 오늘은 아주 특별하고 귀하신 분이 오셨단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광기와 같은 집착과 강요가 담겨져있어 들으면 들을수록 백아엘은 기분이 저조해졌다.

“…알겠어요. 어머니.”

전화를 끊고 택시를 잡아 아엘은 시간을 확인했다.

늦으면 그의 어머니가 무슨 히스테리를 부릴지는 알 수 없었기에 아엘의 얼굴에 귀찮음이 피어났다.

그는 평범했다. 본인의 기준으로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셔 고아원에 보내져 지금의 어머니의 손에 자랐지만 그건 흔하디 흔한 불행이었고 인간의 수백, 수만가지의 삶들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양어머니가 종교의 광적인 신자이며 양아들인 자신에게 천주교의 사상을 강요하며 뜻대로 만들려고 하고있지만 그것또한 흔하디 흔한 인간의 욕망에 불과했다.

“도착했습니다.”

택시가 멈추고 어느새 작은 주택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엘은 택시에서 내려 서둘러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현관문 앞으로 걸었다.

“…….”

하지만 현관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려던 그의 손이 갑자기 멈추고 미세하게 미간이 좁혀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현관 앞에 웅크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놀라지는 않았지만 곤란했다.

경찰서에 데려다 주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고 무시하기에는 나중이 귀찮아 질 것같았다.

결국 그는 한숨을 쉬며 여자아이를 들어올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파출소에 데려다주면 되겠지.’

집안에 불을 켜자 여자아이의 생김새가 자세히 보였다. 소녀는 신기하게도 아주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엘은 무감각한 눈으로 소녀를 쇼파에 내려놓고 식탁위에 약을 보며 먹을까 말까 고민하였다.

아엘의 어머니가 보내준 약은 심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아엘을 고치기위한 약이었지만 정작 약은 아무소용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무기력하며 감정조차 느끼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결국 아엘은 약을 먹지 않고 샤워실로 들어가 빠르게 씻고 나와 하얀 화이셔츠와 깔끔한 검은 색 바지로 갈아입고 택시를 불른뒤 식탁에 소녀가 일어나면 먹을 간단한 먹을 거리를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시간이 느리게 흐리기를 바랐지만 택시는 빠르게 성당 앞에 도착했고 아엘은 빠르게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왔니?”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걸음에 다가오는 중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고아함을 가진 미녀였다.

“왜 이렇게 늦었니? 귀하신 분이 기다렸잖니.”

고된 회사일에 지쳐있었지만 아엘은 어머니의 부름에는 늘 대답해왔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엘의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죄송….”

“됐으니, 어서 오렴.”

아엘의 말을 끊으며 손목을 붙잡으며 이끌었다. 그 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있어 아엘은 그저 양어머니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양어머니를 따라 성당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주교관을 쓴 흰머리카락의 노인이 무릎을 꿇을 채 성스럽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양어머니, 백하영은 마치 존귀한 것이라도 목격한 사람마냥 눈을 빛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가 끝나고 흰머리의 노인이 천천히 돌아서서 백하영과 아엘을 보더니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오셨습니까?”

“예, 늦게 되어 송구합니다.”

백하영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굽신거리면서도 경건하게 양손을 기도하듯이 꼭 쥐며 말했다.

“그 청년이 아드님이시군요. 과연 들은 대로 입니다.”

“미천한 종이 위대한 분의 뜻을 이을 수 있어 감복하기 따름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아엘은 종교에 빠져 광신자처럼 말하는 어머니를 보며 멍하니 그저 순종했다. 심각한 무기력증은 감정을 앗아갔고 아엘은 어떻게되던 좋으니 그저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없이 있고 싶었다. 몸에 힘이 없었다.

“그래, 세례명과 이름이 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멋진 이름이구나.”

“…네.”

아엘. 천사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아 사용하는 그의 특이한 이름에 딱히 감흥은 없었으나 항상 왠지 이물감을 이 이름에서 느꼈다.

“혹시 악마나 천사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니?”

악마와 천사. 성경또는 흔한 이야기속에서만 나오는 허구. 아엘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게 대답했다가는 어머니에게 무슨 귀찮은 짓을 당할지 몰랐다.

그건 상당히 귀찮았다.

“믿습니다.”

“호오, 그렇구나.”

아엘의 말에 흰옷의 케이프의 노인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구나. 아엘, 너에게 사명을 내릴 것이란다.”

환한 미소를 지은채 마치 기쁘게 사명을 받으라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노인의 태도에 아엘은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몰려왔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것 조차 어떻게 되든 좋았다.

“너에게 신성한 천사의 문장을 내려 악마를 처단
하는 사명이 내려졌다.”

“…아.”

노인의 말에 백하영은 작게 탄성을 뱉으며 황홀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자, 이리로 오렴.”

백하영은 어서 가라는 듯이 등쌀을 떠밀었고 아엘은 거부할 생각조차 없다는 듯이 얌전히 노인의 앞에 섰다.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아엘의 양손을 꼭 잡고서는 눈을 감고 마치 기도라도 하듯이 중얼거렸다. 아엘은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흘러가고 아엘은 무슨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온 것인지 모르겠었지만 이미 집에 돌아와 현관문 앞에 서있었다.

“…….”

피곤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 되든 전부 상관없었다. 그 무엇조차도.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쇼파에 재워두었던 소녀가 생각나 거실로 향해서 걸어 쇼파를 살펴보았지만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식탁에 음식도 전부 그대로였다.

‘아, 집을 나갔나?’

그렇게 생각하며 귀찮은 일이 줄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는 순간, 뒤에서 강하게 부딪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빠!”

“……?”

뒤를 돌아보니 붉은 머리의 소녀가 아엘의 다리에 붙어 머리를 부비고 있었다. 아엘도 이것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어떻게 불리든 내일 파출소에 데려다주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아이에 대해서도 무감각한 그였지만 왠지 소녀는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이었지만 가슴안쪽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감정이라고 느끼는 이름모를 무언가였다.

“신기하네.”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은, 뭐라 설명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따뜻함이었다.

‘지금까지 이런적은 없었다.’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양어머니에게 입양되었을 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생소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아엘은 이내
어떻게되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 더러운거 묻히고 왔어!”

소녀는 갑자기 아엘의 손을 잡더니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엘은 오는 길에 뭐라도 뭍었나라고 생각했고 화를 내는 소녀를 손님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눞히고 다시 씻으러 갔다.

자신을 왜 아빠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떨어질려는 생각을 안해 떨어뜨려 놓는게 힘들었다.

“싫어, 아빠랑 있을래!”

“방에 있어줄래? 부탁이야.”

어린애가 보는 앞에서 씻는 취미는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귀찮았지만 소녀를 방에 데려다두는 것을 성공했다.

아엘은 서둘러 씻고 덜 마른 머리로 손님방의 방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녀가 아엘의 품으로 파고 들어 안겼다.

“아빠!”

며칠 못 본 것처럼 소녀는 절박하게 아엘에게 매달렸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며 볼을 잔뜩 부풀리며 말했다.

“더러운게 그대로잖아!”

씻었는데 뭐가 더럽다는 것일까?

“방금 씻었는데.”

“안 씻겼어!”

소녀는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었고 아엘은 영문을 몰라 멀뚱멍뚱 있다 이내 귀찮아지고 말았다.

“자.”

그래서 소녀를 번쩍들어 침대에 내려놓고 뒤돌아 갈려는 순간 강한 힘이 아엘을 잡아 당겨 아엘은 침대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범인은 소녀였다. 저 작은 팔에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생각만할뿐 아엘은 딱히 알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소녀를 마주봤다.

“아빠는 어리숙하니까 내가 씻겨줄게. 그런데 이곳에서는 힘들어. 그러니까 아빠 나랑 같이 가자.”

“어디를?”

함께 가자는 소녀의 말에 아엘은 무감각하게 물었다.

“내가 사는 곳. 이곳 보다 아빠에게 상냥한 곳이야. 이런 더러운 것도 하지 않아.”

소녀는 아엘의 양손을 꼭 붙잡고 뺨을 부비적거렸다.

“그러니까 같이 가자.”

“…마음대로.”

아엘은 그래도 정말 상관없었다. 어떻게 되는 어디로 가든 이 무기력증은 계속되고 죽으면 주고 살았으면 살고 그저 그렇게 삶을 연명할 뿐이었다.

“약속했다? 그런데 아빠이름은 뭐야?”

아엘은 자신의 백아엘이라는 이름을 말할려다 도로 입을닫고 대답했다.

“없어.”

없다는 말에도 소녀는 그닥 놀라지 않고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내 이름도 알려줄게. 난-”

삐이이이이이익-

소녀의 목소리가 이명에 뭍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엘은 갑자기 저절로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아빠는 약하니까 조금 힘들겠지만 내가 지켜줄게.”

소녀는 마치 천사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악마처
럼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같이 가자.”

마계(魔界)로.

소녀의 입을 마지막으로 아엘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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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21 09:55 | 조회 : 1,411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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