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러지들에게 희망을








버러지 같은/
발에 채는 벌레들을 모두 짓밟고 올라선 꼭대기에는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이 탑에 오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내 취미를 포기하고, 학창시절을 모두 쏟아붇고, 친구를 밟았다. 그리고 올라선 그 탑의 정상에는 놀라울정도의 허무함 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 허무함을 간직한 체로 나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벌레들에 밀려 떨어졌다. 나에게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부담스러운 하늘만 보이던, 주위에 남은것이 하나도 없어 놀랍도록 허무하던 그 자리가 그들에게는 행복할지, 잠깐 생각하다 내 처지에 집중했다. 놀라울 정도로 모든것이 순식간에 끝났다. 무엇을 위해 노력한 것인가. 나는 한번을 추락하고도 모자라 살기위해 마구 꿈틀대었다. 물론 탑에 오르기 위해 그것에 필요치 않은 모든것을 포기한 내가 제대로 할리 없었다. 제 풀에 지쳐 꿈틀거림이 잦아들었을 때 쯤. 이 모습을 보고 한 마리 나비는, 그리고 나를 밀어낸 다른 벌레는 에둘러 이 삶을 버러지 같은 삶이라 말했다. 희망은 개뿔. 실로 비참한 순간이었다.











/탑의 꼭대기/
사실 이 버러지 같은 삶은 충분히 꼭대기에 머무를 수 있었다. 치고 올라오는 벌레들을 밟고 다시 오르고 오르다 보면 하늘에 닿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이 탑에 충분히 지쳐있었고, 꼭대기에 간절하지 않았다. 하늘은 아직 너무 아득했고, 숨이 턱 막혀왔다. 추락한 나는 나비가 된 이들이나 꼭대기에 오른 이들을 보고 감탄하는 길 말고는 없었다. 탑의 꼭대기에 오르는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버러지 같은 삶에서는 그것을 바라보고 부러워 하는 것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다시 탑에 오르기에 탑은 너무나 견고해 졌고, 나는 너무 지친 애벌레니까.











/버러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너무나 많은 애벌레들이 남루한 꼴이 되어있었다. 탑 안에 짖밟히는 애벌레들도 다를바 없으리라. 나는 여기서 또 얄팍하고 한심한 안도감을 느꼈다. 지랄맞게도 정말 버러지가 따로 없었다. 아, 이미 버러지가 맞을지도 모른다. 꼭대기의 애벌레가 아니고서는 모두 그냥 애벌레고, 그건 정말 버러지가 맞으니까. 다소 야박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었다.












/나비/
사실 이 버러지같은 삶의 주인공인 애벌레에게는 나비가 될 수 있는 길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희박하지만 가능 한 일이었다. 중학생 시절 진로로 하려다가 취미로만 남겨두고 이내 접어버렸던 미술을 계속 했더라면 지금쯤 탑에서 떨어질 일 없이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어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사실 이 버러지 같은 삶으로도 아등바등 살아갈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피로한 정신으로 구태여 나비가 되어보기로 했다. 어렸을때 손놓았던 미술을 다시 시작해 보려는 심산이었다. 나는 조금 늦었지만 다른 나비들과 같이 번데기를 만들고 잠이 들기로 했다. 깨어났을때 쯤에는 멋진 나비가 되어있을 터였다. 그때가 되면 꽃들에게 희망을 전하리라 낙관적이기 그지없는 생각을 했다.













/꽃들에게 희망을/
나비들과 아직은 버러지같은 생을 접하지 않은 순수한 애벌레들이 입을모아 외쳤다.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이 비추어졌다. 아름답고 낙관적인 전개가 따로없었다. 저 희망에 주가 되는것은 나비임이 틀림 없을 터였다. 이 꽃들은 사회의 아름다운 양상이었다.










/절망/
깨어났을때 나는 나비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남루한 번데기에서 벗어나 쪼그라든 날개를 펼치려 할 때였다. 날개에서 주르륵 무언가 흘러내렸다. 혹 물이 묻은건가 싶었지만. 검붉은 색감과 날개의 고통이 이것은 물이 아니라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애초에 엄청난 악바리가 아니었던 내가 뒤늦게서야 나비가 된다는 부분부터 문제가 있었다. 괜찮을거라 스스로 얼마나 위안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쨌든 일은 기어코 발생하고 말았다.











/몸부림/
한번 펴보지도 못한 날개는 이미 일그러져 망측한 모양세를 이루고 있었고 날개쪽에 위치한 뼈들의 모양은 잔뜩 어그러져 모양부터 잘못 잡혀 있었다. 숨이 간헐적으로 헐떡여지기 시작했고 얼굴이 말간 모양세로 질려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뜯어내야한다, 날개를. 살 수 있다, 그래야만.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있는힘껏 날개를 뜯어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날개도 없이 헐떡이며 바둥거리는 것이 완벽한 버러지였다. 버러지같은 애벌레는 버러지의 모양세를 벗어나려 수 없는 노력을 했지만 그 종착지는 버러지, 어쩌면 그보다 못한 곳이었더라. 젠장맞을 버러지는 끝까지 멍청했고, 빌어먹을 인생에는 한줄기 희망도 없었다. 날개를 뜯어낸 출혈을 버티지 못한 버러지가 풀썩,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주위를 둘러봤다. 놀랍게도, 그 나락속에서는 비슷한 버러지들의 몸부림이 선연했고, 넘쳐났다. 그것은 같은 처지가 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도 못하던 것들이었다. 환멸이 났다. 이렇게나 넓은데도 아무도 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했다. 못한다.











/버러지들에게 희망을/
빛 한줄기 없는 절망속에서 많은 버러지들이 간절히 소망했다.

버러지들에게 희망을...

버러지들에게 희망을.

버러지들에게 희망을!

그러나 버러지들에게는 한줄기 희망도 비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버러지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생겨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버러지들에게 희망을!

그러나 아직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화려한 꽃보다는 버러지들의 희망을 생각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아름다운 문구에 가려진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봐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0
이번 화 신고 2019-11-26 02:20 | 조회 : 1,003 목록
작가의 말
Marigold

보는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리는 글이었으면 좋겠네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