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황녀,에디스(9)-황태자 시점2

에디스, 내 여동생이 죽은 이후로 나는 하루 일과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마다 그녀를 찾아갔다.
아버지인 황제가 보존 마법을 걸어 그녀의 방에 눕힌 덕에 그녀는 살아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맑고 푸른 눈으로 나를 보며 "오라버니!"라고 불러줄 것만 같았다.

"에디스, 오늘은 내게 청혼이 여럿 들어왔어. 근데 다 거절했단다. 아직은...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그것이 인형에 불과한 모습이 남아있어도 에디스가 말을 할 리가 없었다.
나는 그게 서글펐다.
왜 이제와서 이런 후회란 말인가.

그녀가 살아있을 땐 제국민이 우선인지라 여동생 같은 건 나 몰라라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해주는 건데......

나는 말을 하다가 가슴 깊은 곳에서 몰려오는 울컥함에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나왔다.
나 같은 건 울 자격조차 없는데도.
이 눈물조차 내겐 사치인데도.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는데 순간 내 시야에 일기장이 비췄다.
흰 바탕에 분홍 토끼가 그려진, 내 여동생의 일기장이었다.
그 일기장을 펼친 건 어디까지나 호기심이었다.

[1213년 3월 24일]

1213년이면 에디스가 5살이 되었을 때이다.어린아이가 쓴 글씨라서 그런지 지렁이가 기어다니듯 꾸불꾸불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은 실비아 후작 영애와 함께 황궁에서 놀았다. 실비아 영애는 흰색 머리에 붉은 눈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알비노''라는 건가 보다. 몹시 예뻤다. 천사 님 같았다. 실비아 영애는 후작과 후작 부인은 ''아빠와 엄마''로 불렀다. 후작 부부는 실비아를 ''비아''라고 부르며 웃으셨다. 나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면 좋아하실까? 나도 한 번 불러봐야겠다. ]

[1213년 3월 26일
어제 아버지께 혼났다. 무서웠다. 아버지께서 내게 그렇게 화를 내신 건 처음이어서 더 무서웠다. 아무래도 내가 ''아빠''라고 부른 게 잘못이었나 보다. 아버지깨서 함부로 화 내시진 않을테니까. 이건 무조건 내 잘못이다. 근데 어제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피하시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때 내가 ''아빠''라고 불러서 아직도 화가 덜 풀리신 걸까? 그러면 안 되는데......아버지께서 화가 풀릴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 볼까?]

그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 때 아버지가 에디스를 피해다닌 건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직 5살밖에 안 된 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나는 다음 장으로 일기를 넘겼다.

[1213년 9월 12일
아버지께서 나를 피하신지 벌써 6달이 되었다. 아버지는 날 싫어하시는 걸까? 아니면 나 때문에 엄마의 몸이 안 좋아져서...그래서 돌아가셔서 피하시는 걸까? 난 아버지가 너무 좋은데, 아버지는 아닌가 보다......요즘 오라버니도 제왕학이나 다른 수업들로 얼굴 보기도 힘든데...보고 싶은데. 오라버니도 날 싫어하는 걸까? 그건 싫은데......]

종이 여러 곳에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싫어한다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여러 장을 넘겼다.

[1218년 5월 17일
이제 아버지는 예전처럼 나를 ''에디''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무조건 이름으로 불렀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제국의 수치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며칠 간 앓아누웠다. 내가 왜 이런 장난을 치는 지 그 이유조차 묻지 않았으면서......
내가 얼마나 다른 가정처럼 아버지랑 즐겁게 웃고 떠들고 놀고 싶었는지도 모르면서......
오라버니도 마찬가지다. 오라버니의 머릿속엔 온통 제국민 생각 뿐이라는 건 나는 잘 알고 있다. 오라버니는 알고 있을까? 미래에 오라버니가 황제가 됐을 때, 나도 그 제국민들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그 때가 되면 나를 지켜주실려나? 그래도 상관없다. 오라버니는 내가 꼭 지킬 거니까.]

내가 황제가 되었을 땐 에디스도 성인에 가깝거나 성인일 것이다.
그럼 결혼을 해서 황궁 밖으로 나가 가정을 이룰 것이다.
잊고 있었다.
에디스 또한 내가 지켜야할 제국민이란 걸.

''네가 날 지킨다고? 아니야, 그건...내가 널 지켜줘야지.''

나보다 6살이나 어린 동생이 날 지키겠다고 한다.
이렇게 못난 오라비인데도 넌 너무 상냥하다.
그 상냥함을 짓밟아 불길 속에 휩싸인 너를 지키지 못한 나인데도......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이 종이를 적셨다.
문득 다음 장에 써있는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엄마가 나 대신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일주일 전, 즉 에디스가 죽기 이틀 전에 쓴 글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동생 대신 살았으면 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는 일기장을 손에 들고 황제 궁으로 향했다.
에디스의 일기장이 구겨지지 않게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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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1-08 09:57 | 조회 : 1,047 목록
작가의 말
달님이

다음 화는 황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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