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제 2차전-습격(1)



해가 졌다. 어둠이 내려앉고, 빛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애하는 올리스 아카데미 재학생 여러분.]

무언의 빛에서, 모두에게 동일한 크기로 들리는 나의 목소리가.

[이로서 올리스의 게임 1차전이 끝났다.]

1000여명의 올리스. 그리고 반으로 준 500명의 생존자.
아마 그들은 모르겠지. 그 아이의 팀이 ‘나무’에서 몇몇 공격을 받는 동안 그만큼의 사람이 죽어나갔는지를. 가온이 죽인 자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녀가 수거하지 않은 카드는 저절로 돌아왔다. 그러나 미약한 힘을 가진 자들은 죽고, 그들의 올리스는 빼앗기고, 그래서 그들은......

-내 사람이 되었다.

[현재,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던 자들은 자동으로 게임에서 탈락되며,]

자, 이제 나의 역할은 끝났다.

이 갇혀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너희가 어찌나 불행한지.

[따라서 약 10명의 구성원을 가진 50개의 팀이 결성되었다. 부디 서로를 믿길.]

그럼에도 끝을 만드는 것은 너희의 몫.

[자, 그럼 2차전을 시작하지.]


//


“후, 율. 할 얘기가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이에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율이 구한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간 미간이 구겨졌다. 이미 우리는 나무에서 먼 곳으로 온 터였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는 하지 않을게.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그것 참 고맙네. 그럼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왜 구한 거야?”

주어도, 목적어도 빠진 밑도 끝도 없는 질문.

“일단 부탁인데 네 마법으로 방음막이나 쳐줘.”

그 말에 나는 놀랐다. 예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는 마법을 굉장히 혐오했다. 그건 시연과 가온도 마찬가지여서 꽤 자조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그 반응은 마력 자체를 싫어한다기 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귀족이라는 집단을 비방하는 느낌에 가까워서. 아카데미 내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반응이었다.

말없이 방음막을 치며, 물었다.

“네 힘으로도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것쯤은 쉽지 않아?”

“내가 한다고 해도 그 소리를 듣는 능력이 그 아이가 훨씬 더 강하니까, 의미가 없지. 다만 마법은 완전히 다른 개념의 힘이라서.”

결국 아리엘을 위한건가.

“그래서, 대답은?”

대답이 없다. 레이첼은 말을 덧붙였다.

“내가 ‘너’에게 굳이 대답을 요구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아엘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넌 그때 그 아이를 포기해야 했어. 그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아? 만난지 겨우 몇 달 되지도 않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한 거야. 여태까지 알고 있던 모든 인연을 외면하고 간 거잖아.”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알려준 것은 저이건만.

“그럼 내겐 그 모든 것이 중요한데. 만약 너라면, 넌 하나만 택할 수 있겠어?”

“나? 네게 가장 소중한 게 뭔데. 모든 것을 다 가질 순 없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소중한 것을 택해야 해.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모두에게 가치 있는 일을.”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그래서 내게 가장 가치 있는 이는 누구지? 한심하게도 자신이 내뱉은 물음의 답조차 알지 못하구나, 나는.

“내가 아리엘을 구한 게 가치 없는 일이었나? 한 사람을 구한게, 그렇게 싫어?”

“내가 걱정하는 건 지금까지의 너의 친구들, 인연, 그리고 아리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모든 걸 망칠까봐 두려운 거야. 그 아이가 가치있냐고? 그래 있어. 하지만 네 목숨과 맞바꿀 만큼, 지금까지 네가 소중하게 생각한 이들, 그들을 넘어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강력한 올리스보다는 중요하지 않아.”

실재로도 이렇게 강력한 올리스들이 모여 있는 팀은 그들의 팀이 거의 유일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어떻게든 이 전쟁을 빨리 끝내버리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 있는 그의 선택에 그저 동의하지 못했다.

“......하, 우리가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걸 알면 정작 아엘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조용히 말했다.

나 또한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지만. 이 게임이 끝나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선택지지. 감히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그것을 되찾을 방법 따윈 없어.

그러니 차상의 선택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만약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생긴다고 할 때, 넌 무슨 결정을 할 거지? 지금까지의 네 친구들, 혹은 네가 구한 그 아이?”

율이 대답하려는 찰나 가볍게 쳐놓은 방음막이 부서지며, 커다란 충격이 내 올리스로 쳐놓은 방어막까지 힘을 뻗었다. 곧이어 작은 파열음이 들리며 방어막의 가장 약한 부분이 부서지는 것이 느껴저 바로 복구시켰다. 이 정도면, 꽤 강한 팀이 온건가.

“율, 빨리 바람의 힘으로 날 올려보내줘. 당장!”

“그럼 내려오는 건 어쩌려고? 나 지금...”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아엘 한태나 가. 아직 기절한 상태일 거니까.”

바람이 크게 요동치며 허공으로 날 띄웠다. 으, 사기적인 자식. 그 와중에 정확하게 나무위로 떨궜어. 공중에서 펼쳐진 전경은 아비규환. 아무래도 두 개의 팀이 연합하여 온 듯 하였다.

한밤중의 습격이었다.


//


빠지직.

견고하던 방어막의 아주 작은 부분이 부서졌다. 누군가의 습격. 다행히도 곧 보수되었으니, 율과 레이첼도 곧 돌아올 터였다.

“첫 대면이네, 다른 팀과.”

연우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스치듯 작은 목소리였으나 모두가 그 의미를 알았다.

율이 전속력으로 달린 듯 나무 안으로 도착하고, 레이첼이 위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잠시 뒤 텔레포트하여 무사히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상황이야?”

“두 팀이 연합해서 쳐들어왔어. 상대적으로 강한 팀은 우측. 그나마 나은 팀은 좌측인데, 대부분 구성원이 자연계더군. 아무래도 흔한 편이니까.”

“그런데 모조리 죽여야 하는 건가...”

혜민이 중얼거렸으나, 레이첼은 무시하듯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것은,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니까.

“너는 분명, 환각이었나? 그렇다면 넌 당분간 아리엘을 돌보며 나무 안에 있어. 나가는 것은 자연계 올리스인 시연, 가온, 율, 연우. 그리고 이들이 지치면 레나와 이루, 로완이 나간다. 그때쯤이면 상대도 지쳤으니 육탄전만으로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지.”

그리고 만일 그러고도 상대가 물러서질 않는 경우, 혜민의 환각으로 시간을 벌며 레이첼이 마법을 쓴다.

“자연계는 흔하지만 너희들처럼 강한 올리스는 흔치 않아. 우리는 판을 채울 조각들을 모우는 거지, 무차별적인 살인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야. 그저 가장 강한 자만...”

-죽이면 되는 거지. 뒷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둥지를 나서 날아오는 올리스를 쳐 내기 시작했다.

공격해오는 무리 중 가장 강한 힘은 레이첼이 말한대로, 자연계 전반이었다. 간간히 특수능력도 섞여있긴 하였으나 무엇보다도 문제되는 점은, 그 수였다. 수의 차이는 애초에 두 팀이 연합했을때부터 그들이 불리했던 것이다.

“대부분 중위권, 상위권도 몇몇 있지만 가장 문제되는 점은 저 기후의 올리스지. 아마 최상위급인데, 이러면 레이첼이 저 방어막을 유지하지도 힘들고, 우리의 시야도 막히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쾅-

번쩍이는 빛에 이어 우레와 같은 소리가 지천에 울려 퍼지며, 에퀼렌 제국 황립 도서관의 창문 유리에 끈임 없이 세찬 빗방울들이 쏟아졌다.

아, 불편하내.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며, 진갈빛 머리칼의 어린 공작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아카데미 내에서 생활했을 때는, 인위적인 조작이 없으면 항상 맑았으니까. 늘 유안의 조작에 의한 거라 큰 재난피해도 없었고. 아마도 이번 폭우로 피해가 클 태지.’

그럴 때 억지로 가지게 된, 필요도 쓸모도 그에게 없는 돈을 부으면 될 거다. 그의 부모님은 그 간단한 짓을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뭐, 이 도서관에 마음껏 조사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니 상관없으려나.’

그 말마따나 그는 올리스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수상한 점이 많은 장소.

‘올리스는 귀족들이 가진 마력에 상반되는 힘. 하여 관리의 대상에 두지만 만약의 대륙간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최종적인 군사로 쓴다.’ 라는 게 공식적인 존속 이유였지만, 단순히 그런 목적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대 귀족가인 에이로나를 그렇게 쉽게 다루진 못한다. 소년은 그의 약혼녀를 떠올렸다.

청명한 녹안의 소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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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15 20:07 | 조회 : 1,142 목록
작가의 말
시연

늦어서 죄송합니다. 음.... 오랜만의 본편 즐겁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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