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붉은 색의 혼례복에 감싸져
온통 붉은 색의 신방에 홀로 앉아 있다.
난색으로 뒤덮인 공간에 있으나, 싸늘해진 눈빛과 속은 따뜻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대가 오시지 않을 줄은 알았다.
식 중, 내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던 당신이 귓가에 ‘거슬리게 굴지만 마시오’라고 속삭였을 때 부터였던가?
황태자비로 간택되고 첫 입궁 때부터 그가 내게 무례한 태도를 보였을 때 부터였던가?
허나 첫날밤에 낭군의 냉대도 모자라 다른 사내와의 외도 소식이라니.
나 또한 부부 사이의 애틋한 감정은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나를 반려자로서, 제국의 지엄한 안주인으로서의 예의를 갖추었다면 이럴 수 없는 게 아닌가.
뼛속까지 귀족 자제였던 나의 자긍심을 한 순간에 하찮게 만든 그를 용서할 수 없다.
헌데도 어찌 분노가 아니라 울화가 치미는지
어찌해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은 멈추질 않는지
어릴 적부터 감정적인 언행을 철저히 통제받았기에 감정에 서툴렀던 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의 까닭이 비참함이었다는 걸 끝내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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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흑... 폐하..."
"그래, 그래 정아야."
또다.
나는 황제의 집무실 안에서 들리는 저급한 소리를 문 앞에 가만히 서서 듣고 있었다.
본래 황후의 행차를 집무실 안 황제에게 알렸어야 할 경비병은 문 앞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황후 폐하....."
"고하지 말게."
시도때도 가리지 못하는 저 치가 정녕 황궁의 주인이라는 것에 실소하며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기나길었던 정사가 끝이 난 듯 조용해진 안에서 곧이어 예쁘장한 사내 하나가 조심히 나왔다. 문 앞에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발견하곤 허겁지겁 고개를 숙이고 달아나 버렸다.
문 앞에 내가 서있는 걸 알고 있었던 듯 황제의 측근 환관이 거만한 태도로 들어오라는 황제의 허락의 말을 전달했다.
황후의 앞에서 거만을 떠는 황제의 환관이라
어디에서 기인한 태도인지는 깊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속으로 혀를 차며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간 나는 사랑스럽고도 미칠듯이 증오스러운 황제의 얼굴에 신물이 올라오는 것같은 가슴을 내리누르며 그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