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 인간이랑 연애 하고싶어

"어이 막센다 아이호테푸스칼라."

"편하게 아이칼이라 부르십시오, 마제 카일라지스 시아투르파."

"너부터 시아라 부르지? 아 존나 어색해."

"언행에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어찌 제가 감히 마제의 귀함을 멋대로 부른답니까."

시아와 아이칼, 둘의 오가는 대화를 듣는 마제의 호위기사 젤리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다른 마왕족이나 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끼리만 마제실의 있는 것인데 아이칼은 시아에게 단단히 삐졌는지 존대하기를 고수했다.

젤리를 포함한 대화의 참여자 셋은 나이차이는 많이나지만 -크게는 100년 작게는 15년으로- 애기 때부터 생을 함께한 죽마고우였다. 젤리는 겉으론 과묵한 성격이라 평소와 같이 잠자코 있었으나 호전적인 아이칼은 당장이라도 칼을 빼들어 보통이라면 하루에 오십번이라도 했을 대련을 신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시아투르파의 즉위식 때문이다. 즉위식은 그녀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자신이 사랑하던 하급마족과 사랑의 도피를 떠나버린 탓에 그 어느 때보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인수인계도 받지못하고 덜컥 마제가 되어버린 젊은 시아는 혼란스러웠고, 앞으로 닥칠일에 근심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시아투르파, 할 일도 없으면서 내 대련 상대를 안해주겠단 이유가 뭐야?"

그렇다. 시아는 마제가 되었으면서도 할 일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인 전 마제는 책임감이 없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일처리를 모두 정리해놓고 갔고 그의 부하 귀족들에게 근 10년은 시아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 단단히 일러놓았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일을 배우고싶다 떼써도 올해 504살이 되는 어린 마제에겐 무리라며 간청하는 족족 거부 당했고 그로인해 현재 시아는 그녀의 호위기사, 아이칼, 젤리-피아 제리루스-와 함께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칼티 시아투르파라 칭하는 것은 아직도 그가 그녀에게 반항하고싶단 증거였다.

"귀찮게 하지말고 저리가. 그렇게 대련이 하고싶으면 젤리랑 하면 되잖아."

"젤리는 너무 강해서 안돼, 빨리 끝난단 말야."

언제나 젤리와의 검승부에선 완패를 당하는 아이칼이 쓴웃음을 지었다. 젤리는 초록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젤리보다 강해. 아주 웃기는 소리 한다."

"마법 빼고 검으로만. 마법으로 대련하면 너한테 이길 놈이 누가있겠어?"

아하, 시아는 그제야 납득했다. 셋 중에서 순수 검으로만 강한 것은 당연 젤리였다. 귀족인 그의 가문은 대대로 훌륭한 기사를 배출했고 그도 그 중 하나였다. 어쩐지 아이칼 저 녀석은 자신한테만 시비걸고 젤리에게 손댄적이 없다. 하지만 젤리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칼이 자신에게 덤비지 않는 것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것을 굳이 시아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난 대련하기 싫어. 난 지금 엄청난 고민을 하고있단 말야."

"너가 고민이라고?"

반항하길 포기했는지 시아를 함부로 불렀다. 시아는 생각머리가 없는 편으로 그녀가 자신들에게 숨기는 고민거리가 있었단게 신기했다.

"나 인간이랑 연애 하고싶어."

"..."

"..."

아이칼과 젤리 사이에 눈짓이 오갔고 둘 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기색이었다. 마왕이 인간과 연애? 말도 안된다. 그의 아버지인 시아칼리파가 하급마족의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는 건 사실 문제가 안된다. 그는 그저 연인과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 뿐이고 계급이 나누어져있지만 꽤나 평등한 마족사회에서는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진부적인 고전소설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달랐다. 마족이 인간과 정을 맺어 태어나는 것은 죽어버린 아기의 시체 뿐이었고, 그 때문에 마족과 인간사이의 연애는 금기시 되었다. 시아투르파는 울상이었다. 자신도 그 정도도 모를 바보가 아니지만 그녀는 인간을 너무나 좋아했다.

"너.. 너 혹시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은 시아의 100살을 맞이하던 생일 날, 어린 소녀에게 불꽃같이 피어난 사랑의 주인공 이었다. 그는 기다란 은색 머리칼과 황금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졌었다. 비록 복면을 쓰고있어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외모는 출중할 것이 확실했다. 시아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랑하진 않았다. 그저 인간에 대한 호감이 증폭된 계기가 될 뿐 사랑의 감정이 싹트진 않았다.

그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인간계에 어찌 저리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가? 인간들은 모두 저 같이 여리하고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인간과 연을 맺어보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제 시아투르파는 상당히 계획 실행 능력이 빨랐다.

"맞아, 그리고 내가 딱 3개월 동안 나와 너네 둘의 휴직서를 써놨거든? 당장 짐싸."

"뭐라고?!"

"..."

젤리는 과묵함을 유지한 채 칼집에 손가락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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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06 15:33 | 조회 : 362 목록
작가의 말
오스트랄로 몽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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