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의 악몽 - 1

기분나쁘게 떠오른 보름달과 마구 휘날리는 붉은색 낙엽은 자신이 지지리도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아아- 정말 싫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스트레스를 받는 참이었는데, 이렇게 기분나쁜 상황이라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혐오스럽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끔찍한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재촉하자 알수없는 물체가 발목에 치였다.

고개를 슬며시 내리자 붉은 털을 가진 고양이가 보였다. 왜인진 알 수 없지만 등골이 서늘해져갔다. 지지리도 싫어하는 단풍색의 털과 기분 나쁘게 그어진 왼쪽 눈의 상처, 노란 오른쪽 눈과 검은 점박이를 가진 녀석이었다.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하나 남은 놈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듯한 살기가 느껴졌다. 발 끝 혈관에서부터 차차 올라오는 공포심에 입술이 새파래지는것이 느껴졌다.

"재수가 없으려니 이렇게도 없네... 안 꺼져?"

그저 놈과 눈이 마주친 것 뿐인데도 금방이라도 잡아먹힐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정말 잡아먹힐 것 같아서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지르자 놈은 가소롭다는 조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놈은 떠났지만 여러모로 찝찝해진 기분에 서둘러 발걸음을 내딛었다.

손바닥만한 창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슬며시 눈을 떴다. 오늘은 여러모로 악몽을 꾼것같다. 어젯밤의 그 녀석 때문인걸까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랜만에 꾼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악몽.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그 날인걸까? 달력을 확인해보자 역시 오늘은 11월 29일이었다. 늘 이런 꿈을 꾸는 날이라 그렇다 생각해보아도 꿈의 내용은 너무나 끔찍했다. 자신을 응시하는 수만개의 눈동자와 의지와는 상관없이 칼로 혈육을 찌르는 자신의 손, 그리고 끊임없이 춤을 추다 쓰러지는 자신.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는 부모의 비난-

너무나 끔찍했다. 아아- 역시 이런 꿈을 꾸는 날은, 죽고싶어... 자연스레 침대 옆 책상에 올려져있는 칼날을 들었다. 손목을 긋자 방울방울 피어나는 검붉은 장미꽃과 바닥으로 헤엄쳐가는 붉은 금붕어... 이 모든것은 언제나 짜여진 각본이었다. 아프다, 아파, 너무 아픈데, 좋아... 투명한 눈물과 핏방울이 섞여 바닥으로 스러져갔다. 나무로 된 바닥의 틈에 스며드는것이 꼭 자신의 손목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가리고 가려봐도 상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아프다.

아- 정신을 놓고 긋다보니 어느새 손목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칼날 역시 붉은색으로 물들어있었고, 칼날을 너무 세게 쥔 탓일까 쥐고 있던 손에서 피가 났다. 썩 나쁘진 않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쾌감에 차마 삼키지 못한 타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에게의 최선책은 이것이었다.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울리는 전화에 정신을 조금이나마 차렸다.

"여보세요?"

"오늘 네 형 기일인거 알지?"

"... 네."

오늘이 벌써 형의 기일인걸까- 아. 생각해보니 그러니 또 악몽을 꾸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끼치자 혐오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너무나 끔찍했다. 형은 왜, 대체 왜 죽여서도 나를 괴롭히는걸까? 애초에 뒤질거면 곱게 좀 뒤지지 왜 유난스럽게 뒤지고 지랄이야, 갑자기 한참 전에 끊었던 담배가 생각날 지경이었다.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 올건지 안올건지."

"네, 이만 끊을게요."

"더 듣지 않고...!"

이어지는 말을 무시하고 전화기를 던졌다. 죽고싶다. 저 속 혈관에서부터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느낌- 말 그대로 끔찍해졌다.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다정해보이는 그 목소리도, 미소를 지은 그 표정도 모두 거짓이야. 아아, 끔찍해라.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며 몸이 떨려왔다. 이 순간만은 부모도, 선생도 아닌 형이라는 이름을 한 원수새끼가 죽일듯이 미웠다. 어째서 죽을때도 요란스럽게 죽어 모두 혼란스럽게 만드는 저런 자식이 본인의 혈육이라는 걸까? 끝없는 의문과 혐오감이 나를 잠식시키고 있을 뿐이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정에 피로 흠뻑 젖은 바닥을 무시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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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21 16:02 | 조회 : 516 목록
작가의 말
April89

헤헤 짧게나마 올려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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