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34화

성진이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자 낡은 문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수염이 거뭇하게 난 40대 후반에 남성이 눈에 보였다.

종이 뭉치를 손에 들고 몰두하고 있는 남자는 쉽게 말을 붙이기 어려울 만큼이나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진이는 머뭇거렸고 그에게 인사하기 전에 그가 먼저 성진이를 발견했다.

“ 박성진씨!!!! ”

우렁찬 그의 목소리가 방 안을 한가득 울렸다.
성진이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가 빠르게 걸어오며 성진이의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 반갑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성진씨가 데뷔 초반.. 아니다.. 데뷔하기도 전에 오디션을 이원이랑 함께 심사했던 박홍건입니다. ”

“ 알고말고요. 지금껏 해 오셨던 영화는 다 보았는걸요. 가수와 배우로 일하고 있는 박성진입니다. ”

“ 자, 이렇게 서있지 말고 어서 앉아요. ”

성진이는 홍건의 말에 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성진이가 앉자 홍건은 성진이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따라서 쭉 내밀었다.

“ 이렇게 영화에 출연해준다고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

“ 저야말로 섭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닐까 싶네요. ”

“ 아닙니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성실하다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안심입니다.
그 연기력에 비주얼에 성실함까지 갖추었으니 몇 달이든 몇 년이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다 못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홍건의 칭찬에 성진이는 머쓱히 웃었다.
성진이가 물을 마시며 눈을 미끄러트리니 아까 홍건이 집중하면 보고 있었던 종이 무더기가 보였다.

‘ 저건... ’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자신도 받았던 ‘속고 속이는’의 대본이었다.
그 눈짓을 본 것인지 홍건은 특유의 시원스런 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 아마 오래되어서 기억은 못 할 테지만 대본이 꽤 많이 수정되고 추가되었거든요.
없어진 부분도 꽤 되고요. ”

“ 아, 기억납니다. 그때랑 많이 스토리가 변했더라고요. 속고 속이는 이라는 제목의 의미도 확 와 닿아요. 분명 원래 스토리는 처음부터 주인공이 살인범으로 나오는 공포.. 스릴러였죠?”

“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진부해질 것 같아서 주인공을 경찰로 만들었죠.
본인이 저지른 사건을 담당하고 마치 계속해서 범인에게 당하는 억울하고
굴욕적인 형사 역으로 나오죠. 영화 속 인물들도 관객들도 속이는 거예요. 그는 마치 범인에게 속는 느낌을 주지만 결국에는 모두를 속이는 살인마이자 경찰인 것이죠. ”

성진이는 홍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예상치 못한 정체의 충격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에 틀림이 없었다.

‘ 평가기능에서도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다르게 상당히 높았으니까.. ’

성진이가 속으로 평가 기능으로 보았던 ‘속고 속이는’의 평점을 되새겼다.

“ 성진씨 혹시 대본을 좀 읽어보셨습니까? ”

“ 물론이죠, 정말 맘에 드는 작품이라 대본을 수없이 읽어보았습니다. ”

성진이의 말에 홍건은 입을 호선으로 그렸다.

“ 그러면, 지금 바로 연기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

“ 지금 말인가요? ”

“ 아무리 성진씨가 섭외한 배우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로 소화해낼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오디션이라고 생각해주세요. ”

홍건의 말은 단순히 실력을 본다는 말이 아니라 만일 자신의 기준의 미치지 못한다면 영화 주연역은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의 뜻을 알아챈 성진이는 긴장에 마른침을 조심히 넘겼다.
읽어보기야 많이 읽어보았지만 연기는 단 1번도 하질 않았다.
단 1번의 연습도 없이 하려고 하니 걱정과 두려움에 선뜻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해볼께요. ”

“ 대본은 보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페이지 30에 part2 「서민철 경찰의 격분」씬과 페이지 57 part 6「살인 」씬을 연기해주세요. 살인씬같은 경우는 표정과 짧은 제스처로만 해주세요. 격분씬도 마찬가지입니다. ”

홍건의 말에 성진이는 건네받은 대본을 빠르게 펼쳤다.
수많은 대사들과 지문들이 성진이의 눈에 박혔다.
이 두 장면 모두 많이 읽기야 읽은 장면이지만 읽는 와중에도 느꼈던 까다로움은
성진이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성진이가 긴장에 한숨을 내뱉던 순간에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속고 속이는」의 저장된 데이터가 있습니다. ☜
☞「속고 속이는」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속고 속이는 Lv.2」의 소화력이 10% 상승합니다.☜
☞「속고 속이는 Lv.2」의 이해도가 10% 상승합니다.☜
☞「속고 속이는 Lv.2」의 총 연기력이 20% 상승합니다.☜
☞「속고 속이는 Lv.2」의 경찰 ‘서민철’, 살인자 ‘이태현’역의 몰입도가 30%상승합니다.☜

끊임없이 울리던 알림음이 멈추고서야 성진이는 이것이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1번 연기해보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것에 대한 데이터가 남아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 ?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

홍건의 눈에는 성진이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니 의문이 들어 물었다.
성진이는 정신을 차리며 아무 일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

홍건의 말에 성진이는 고갤 끄덕이며 숨을 한 번 고르고서 대본을 덮었다.
그 행동에 홍건은 눈썹을 좁히며 성진이를 유심히 보았다.

▷연기력이 34% 상승합니다.◁
▷「기적의 탑스타 Lv.2」능력으로 인해 연기력이 46% 상승합니다.◁
▷「기적의 탑스타 Lv.2」능력으로 인해 규모 (소) x2만큼 연기력이 상승합니다.◁
▷「속고 속이는」 서민철, 이태현에 몰입합니다.◁

“ 이런 미친놈이!!!”
성진이는 책상을 강하고 짧게 내리쳤다.
강렬한 타격음이 그가 얼마나 분노에 찼는지를 표현하는 듯 했다.
표정을 한껏 일그러뜨린 성진이의 표정은 원망과 분노가 가득해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저 분노어린 연기에 홍건은 저도 모르게 그를 말릴 뻔했다.
큰 몸짓도 분위기도 딱히 어둡지 않았음에도 숨이 막히는 분노표출이 성진이 본인은 물론이고 홍건까지도 마음이 격해짐을 느꼈다.
연기함에 있어 괴성을 지르는 것과 고함을 지르는 것은 한 끝의 차이이지만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성진이 같은 경우 괴성을 지른다면 되려 너무 오버되어 보이고 몰입도를 저하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성진이는 괴성이 아닌 고함을 지름으로써 그의 연기는 더욱 돋보였다.

“ 바로 이어서 해주세요. ”

홍건은 잠시 넋을 잃고 연기에 빠졌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지시를 내렸다.
성진이는 그의 말을 듣고 마지막 지문에 따른 표정까지 취한 다음
잠시 숨을 찬찬히 내쉬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차가운 시선이 홍건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처음 보았던 살인자 연기보다도 훨씬 깊어진 연기력이 소름끼쳤다.
차갑게 끌어올린 성진이의 미소는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홍건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허탈하게 웃었다.

‘ 이거... 여심이 남아나질 않겠는데.. ’

심장을 부여잡고 얼굴이 붉힐 여자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마지막까지 연기해내고 나자 홍건은 기분 좋게 웃으며 성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 완벽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성진이는 다행히 큰 문제없이 끝나자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성진이가 타들어갔던 목을 시원한 물로 적셨다.
그런 성진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홍건이 말을 덧붙였다.

“ 성진씨, 혹시 다음주, 토요일쯤에 시간 괜찮으세요?”

“ 토요일이요?.. 특별한 스케줄은 잡혀있지 않습니다. ”

성진이의 말에 홍건이 웃으며 권하듯 손짓하며 입을 뗐다.

“ 다음주, 토요일에.. 「속고 속이는」 조연들의 오디션을 보거든요. ”

“ 네 ”

성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홍건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홍건은 웃음을 유지하며 말을 덧붙였다.

“ 그 날 성진씨가 제 옆에서 조연들을 뽑는 심사위원역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그 말은 성진이를 놀라게 하다 못해서 충격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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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0-16 21:50 | 조회 : 2,947 목록
작가의 말

이제는 허리가 너무 아프네요..ㅠㅠ 제가 몰아서 아픈것으로 할테니 독자님들은 건강 꼭 챙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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