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26화



소회의실에는 종이를 넘기는 작은 소리와 리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리딩이라는 건 말 그 자체로 단순히 읽는 것이니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리딩은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서 서로의 대사와 지문들을 읽으며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주연들도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산뜻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 단순히 읽는 수준으로

리딩했다.

딱히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것이 문제는 없어 보여 성진이도 읽는 수준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다음 18씬 ‘상하와 성진이가 카페에서 이야기 하는 장면’시작하겠습니다.”

작가 서채원의 말이 들리고 상하가 긴장했는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힘차게 ‘네!’라 답하고서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상하가 작게 숨을 고르고서 입을 떼었다.

“ 와, 여기 디저트들 봐.. 너무 예쁘다.”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지만 작가는 살짝 눈짓만으로 바라볼 뿐 별말 하지 않았다.

“ 어이구, 단 음식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지 ”

성진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사를 읽자 감독과 작가, 배우 또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들 까지도 시선이 성진이를 향했다.

“ 성진씨? ”

“ 네?..”

처음으로 작가가 리딩을 끊자 성진이는 불안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 연기 안 해도 되요. 단순히 읽는 거니까 ”

“ 연기...요? ”

성진이는 의문이 들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작가도 함께 의문을 표했다.

“ 저...연기 한 거 아닌데요..?”

성진이에 말에 성진이를 제외한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떡 벌렸다.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만들었지만 성진이의 표정도 만만치 않게

당황한 표정이라 금방 그 의혹은 접혔다.

‘ 허... 그냥 읽은거라고?..뭘 얼마나 연습하면... 저렇게 본인도 모르게 몰입하는 거야..’

성진이가 이렇게 단순히 읽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그가 오.행.다의 성진이를 연기한다고 느낀 것은 성진이가 저번에 보았던 「새 ‘오늘도 행복합니다.’ 대본은 20번 이상 연습하셨습니다.

‘오늘도 행복합니다.’ 배역 ‘박성진’역에 예전보다 깊은 연기력을 보입니다.」라는 알람 때문일 것이다.

그 알람의 의미는 역 ‘박성진’에게 더욱 깊이 몰입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진이는 단순히 자신의 배역의 대사를 읽었을 뿐임에도 어느 순간 몰입되어 있는 것이다.

서채원이 황당한 표정으로 성진이를 바라보다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 그..래요? 그럼..이어서 리딩 하겠습니다. ”

그 말에 성진이와 상하에 리딩은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작가 서채원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배우들과 감독 매니저들도 예외는 없었다.

상하도 성진이에게 이끌려 이제는 연기를 하며 읽었다.

‘ 아니...어떻게 말만으로 이정도 연기를 내세우지..?’

서채원이 특히나 놀란 이유는 성진이가 연기하는 ‘박성진’이 작가 서채원이 그렸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박성진’과 연기하는 성진이가

절묘하게 합쳐져서 한층 더 살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왠지 배우들이 아까와는 달리 연기하며 리딩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진이 만큼 되지 않아 분한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약 30분이 지나고 리딩이 끝이 났다.

원래라면 더 빨리 끝났을 테지만 성진이 때문에 괜히 불이 붙은 배우들이 한 문장 한 문장 진지하게 연기하며 틀리면 다시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기에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 오늘 수고하셨구요. 다음 촬영일인 금요일에 각자 시간을 맞추어 오시길 바랍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채원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잘 부탁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박성진씨 맞죠? 아까 보니까 대단하던데 기대하겠습니다.”

“ 아, 허장현 선배님 안녕하세요. 기대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

허장현은 악역 배우로 유명했고 지금 이 드라마에서도 악역을 맡은 사람이었다.

짙은 눈썹과 매서운 눈매가 무서워 보였지만 웃음이 푸근해서 단숨에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허장현을 기점으로 몇몇 배우들이 악수를 권하며 인사했고 성진이도 웃으며 인사했다.

충분히 인사를 나누고서 헤어졌고 북적거리던 소회의실이 설렁할 만큼 조용해졌다.

“ 그럼 서채원 작가님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 물론이에요. 감독님 잘 부탁하겠습니다.”

서채원이 감독 병지원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 먼저 병지원이 소회의실을 나섰다.

“ 후우- 아주 대어를 잡았어”

서채원이 기분 좋게 입 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고 가방을 챙겨서 나가려는데

누군가 서채원을 불렀다.

“ 작가님”

“ ?.. 아 대원씨 무슨 일이세요?”

김대원은 오.행.다의 조연인 사람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탐탁지 않아보였다.

“ 박성진씨 말입니다. 중간에 들어온 거 맞죠? ”

“ 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중간에 들어오게 되었죠”

“ 하...”

김대원에 감추지 않고 대놓고 한숨을 쉬자 서채원이 눈썹을 꿈틀였다.

“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박성진씨랑 그..누구냐... 박성진 애인역....

쨋든 아시잖습니까? 그 두 사람........그 두 사람의 지분(비율)이 너무 큽니다.”

“ 예..?”

“ 저도 지금껏 단역에 맞는 역만 주구장창 해왔습니다. 무려 6년을 그래오다가 이제야

좀 얼굴이 나오는 조연을 하게 됐는데 제 지분(비율)이 반으로 줄었잖습니까?”

김대원, 그는 배우를 목표로 했지만 연기력도 그저 그렇고 마스크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니라서 좋게 말해서 단역이지 그냥 말딴 으로서 맞는 역만 계속 해온 샌드백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인데 성진이가 나타남으로서 새 대본에는

그의 비중이 확실하게 줄어들었기에 그 또한 어이가 없고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서채원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대원이 나오는 장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성진이가 들어오는 것은 곧 조연이 2명이 되는 것이니 당연했다.

그렇다고 김대원의 출연 장명만 줄인 것은 아니었다.

주연들도 예외 없이 출연 장면을 줄여서 대본을 썼다.

대사를 조금씩 수정해서 빠르게 끝내기도 했다.

김대원에게도 1/2만큼 줄인 것이 아닌 1/3만큼만 줄인 것이다.

때로는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하거늘 그 혼자만이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작가가 모든 것을 맞출 수는 없다.

솔직히 본다면 성진이와 상하의 출연도는 주연인 커플보다 당연히 출연 장면이 적었고

김대원 보다도 약간 적었다.

서채원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갈아 앉히며 말했다.

“ 김대원씨, 지금 출연 비율이 1/3정도 줄었다는 것으로 그리 억울해 하고 계신건가요?

김대원씨만 줄은게 아닙니다. 서혜씨와 지운씨 출연 비율이 줄었고요.

성진씨와 상하씨 비율도 대원씨보다 적습니다.

성진씨와 상하씨가 그것을 모르고 아무 말 안 했겠습니까?

서혜씨랑 지운씨가 자신들 출연도가 깎인 걸 몰라서 가만히 있었겠냐고요.

한 사람의 장면을 만들려면 그만큼 원래 있던 장면을 수정하거나 없애서 만들어야만 합니다.

찍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 최선의 방법으로 이루어 내야 한다고요.

사실은 저도 상하씨랑 성진씨의 출연 비율을 더 높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참고서 새 대본을 쓴 겁니다. ”

다행히 성진이와 상하는 불만이 없이 잘 하겠다며 말해주었고

주연들도 새 대본을 보고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을지 몰라도 티내지 않아주었다.

성진이와 상하 송서혜와 박지운은 서채원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았다.

“ 더 출연하고 싶은 마음에 욕심이 날 수는 있습니다. 대원씨 말고도 모두가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자신의 만족치 못한 출연도 보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장면들에 더 신경 썼습니다. 대원씨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려 리딩시간에 성의 없이 할 때! 네 분은 최선을 다해 했다는 말입니다. ”

서채원이 날카롭게 지적하자 김대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 지었다.

“ 허, 그래서 제가 잘 못 했다는 겁니까? 그리고 3/1만큼 비중이 줄어든게 얼마나 큰지 모르세요? 아, 모르시겠죠. 배우가 아니라 그냥 적어주기만 하면 되는 작.가.님이니까요.”

서채원은 화내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않으며 김대원을 단지 한심스럽게 봤다.

그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대원이었다.

“ ㅁ..뭡니까!! 그 얼굴은!”

“ 꼭 있죠.... 사람이 말을 하면 분쇄기처럼 바로 갈아서 뇌에서 받아드리지 못하는 놈들이..”

서채원이 작가답게 비유법을 써가며 김대원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 얼굴에 김대원이 새 대본을 바닥에 힘껏 내던지며 “ 씨발!!” 이라는 욕을 날리고

요란하게 큰 소리를 내며 나갔다.

“ 허이구... 튀는 거 보라지.. ”

서채원이 우습다는 듯이 입 꼬리를 비틀어 비웃었고 가방을 들어 자신도 소회의실을 나갔다.

-

“ 저..성진씨...촬영 괜찮겠죠?”

상하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불안한 듯 물었다.

“ ? 왜요?”

“ 아까 리딩 할 때 보니까 별로 좋은 시선은 못 받는 것 같아서요...”

“ 괜찮겠죠...음..사적인 감정을 우선시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시지 않을까요?”

“ 일 할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좋은 만남이면 좋잖아요..”

“ 괜찮을 거에요. 같이 연기하다 보면 정도 붙고 그렇겠죠 뭐. 앞으로...음...ㅇ..애인 역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진이가 순간 부끄러워져서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상하도 약간 민망한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 그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

“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상하와 성진이는 헤어졌고 어느덧 촬영당일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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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8-10 03:53 | 조회 : 3,190 목록
작가의 말

그림을 그리다가 늦었어요 ㅠ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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