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의 아저씨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좁은 길을 따라 아파트로 들어갈 계단을 향해 걷는 도중 눈앞에 보인 한 아저씨. 폰을 하며 걷느라 신경을 잘 안 썼는데 길 한 가운데에 서 있어서 비켜가기가 애매했다. 그 사람의 앞을 지나쳤다.


그런데 내가 앞을 지나가는데 날 따라 돌아가는 고개. 그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선명히 보이는 허연 눈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주시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 올라 서둘러 아파트 문을 열어 들어가는데 그 아래로 그 아저씨가 갑자기 본인도 아파트 쪽으로 들어오려고 몸을 움직이는 게 보인다. 시선을 흘끗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기다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게 훨씬 안전하다는 걸 계산할 수 있었을 텐데도 겁에 질려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5층 정도를 허겁지겁 뛰어올라오니 숨이 차서 헉헉댔다. 그러나 끊임없이 겁이 났다. 금방이라도 내 숨소리를 듣고 그 아저씨가 빠르게 밑에서 쿵쾅거리며 쫓아올 것 같았다.

안 돼.

소리 내지 마.

필사적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나를 잡으면 뭘 할까?
성폭행? 살인? 유괴?

무엇이 되는 결국은 나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은 결말. 목이 졸라지는 듯 했고, 서늘한 칼이 복부를 뚫거나 목을 그을 것 같았다. 성인 남성의 힘으로 강하게 구타를 당하다 이내 잔인하게 난도질 당하고 토막나 유기되는 상상까지 스쳤다.

살고 싶었다.

다행히 밑에선 아무 소리도 안 난다.

마구잡이로 뛰어 도착한 집에서 부모님이 멋모르고 반겨주신다. 주저앉아 상황 설명을 하니 걱정을 해주시며 경고하셨다.

진짜로 나쁜 마음을 먹은 거면 성인 남성은 중년 아저씨라도 일시적으로 압도적인 속력을 내 나를 따라잡을 수 있고 힘도 마찬가지라고. 다음부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하. 힘이 쭉 빠진다.

이 글을 쓰면서도 좀처럼 공포의 기억은 가시질 않는다. 계단을 한 층 한 층 올라올 때마다 켜지던 불빛. 만약 아파트 밖에서 그 층수를 셌다면 어쩌지.

과도한 상상...이었으면 부디 좋겠다.

두려움을 없애려 재밌는 영상도 찾아보고 숙제도 끄적였다.

이제 누워서 이 소름 돋는 기억을 기록한다.

그러다 이내 멈춘다.

아.

내일은 학원 더 늦게 끝나는데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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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22 04:08 | 조회 : 796 목록
작가의 말
RINHYE

전화요금도 다 써버렸는데.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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