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녀




      1.


 그 날은 화창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확실히 겨울의 흔적은 드문드문 보였지만, 가만 보면 여지없는 봄의 절정처럼 보였다. 나뭇잎은 언제 떨어졌었냐는 듯 푸르게 빛을 내고 있었고, 숨어있던 새들은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풍경에, 봄이 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는 겨울이 싫었다. 겨울은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고, 괜스레 화를 내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날씨가 쌀쌀해질 때 즈음 창밖을 보며 몸서리를 쳤고, 나갈 생각은 내내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겨울을 싫어하는 것과 반대로 봄을 자못 좋아했다. 그녀는 싱그러운 바람과 곱게 피어난 꽃들을 좋아했다. 봄에 언제나 그런 경치를 볼 때면, 그녀는 나가고 싶어서 발을 굴렀다.

 어쩌면 그녀는 겨울을 뺀 나머지 계절은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을에는 잎의 색이 바랜 나뭇잎 밟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언제나 가을에는 오전, 점심때에 산책을 가곤 했다. 반면에 여름─그녀는 여름이 매우 덥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에는 바닷가 쪽에 위치한 별장에서 계절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날씨가 화창하면 그녀는 온갖 먹거리와 물품을 챙겨가 바다에서 풍경을 만끽했다.

 요즘 그녀는 쓸데없는 로맨스 소설 따위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소설이 겨울을 싫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점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청소를 돕는 하녀를 빼놓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그녀의 침실의 작은 책장에는, 언제나 새로운 소설책이 꽂혀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하녀에게서 받아오는 것이리라.

 당연히, 그녀의 방에는─하녀를 빼곤─아무도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엉터리 소설책에 심취해있는 것을 그녀의 가족은 일절 눈치 채지 못했다. 가끔 열려져있는 그녀의 방문사이로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고, 그녀가 지식이 굉장히 많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침실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허비했다. 그마저 안 한다면 소풍을 나가거나 집안일을 도와줬다. 그녀의 부모님은 미래를 걱정했지만, 책을 읽는다는 소리에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 나갈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그녀는 만남의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다. 심지어 학교도 다니지 못해, 친구라고는 집안의 하녀들, 가족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 답답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독을 즐기려 애썼다.

 어쩌면 그녀는 외로움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워낙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가끔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시도를 해 보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번번이 실패했다.

 그녀는 오늘에야말로 어떻게든 이 답답한 방안에서 탈출해보겠다고 생각해보던 참이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오늘은 지난날처럼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오늘이라면 시도할 수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곤 읽던 책을 내던지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녀는 없던 애교를 부려가며 아버지에게 매달려 물었다. “아버지, 저도 무도회, 파티 같은 곳에 가보고 싶어요. 어디 그런 곳 없을까요?”

 “글쎄다. 요즘은 그닥 떠들썩하지 않구나. 초대장이 오면 알려줄 테니 걱정 말고 가서 마저 책이나 읽어라.” 아버지는 식사를 멈추시고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에 그녀는 오늘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는 한숨을 쉬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이 지나자, 곧줄 방 안에만 있던 그녀의 귀에도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커다란 저택이 있었는데─사실 그곳은 한 귀족의 별장으로 알려져 있다─그곳에 살고 있는 돈 많은 귀족이 잔치를 연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얼굴을 피고 부모님께 달려가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으며, 그녀가 그런 곳을 간다는 사실에 좋아했다. 그 무도회는 약 일주일 뒤면 열릴 예정이여서, 그녀는 빠르게 잔치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그녀는 이 작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옷 가게에 들려 자신의 노란 빛 머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빨간빛이 도는 파란색 실크 드레스를 샀다. 그 중간 중간에는 부모님께 예절을 배워가면서, 어떤 머리스타일이 어울릴지 고민하며 머리를 손질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멀리 시내에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가서 반짝이는 예쁜 가죽 구두를 하나 샀다.

 그 때문에 비용이 상당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잔치에 가기 전날에 그녀는 남들 몰래 침실에서 드레스를 입어보고는 웃었다. 그녀는 너무나 즐거워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였다.

 그녀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오늘이 그날이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는 잔치는 저녁 늦게 시작하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 놓고 다시 푹 잘 수 있었다.

 잔치에 도착할 때 즈음에 그녀는 화려한 마차를 보면서부터 감탄사를 날렸다. 하나뿐인 실크 드레스를 조심히 올리고, 마차에 타면서 혹여 드레스에 진흙이 묻을까 마음을 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휘양 찬란한 불빛을 보았다. 그녀는 그곳이 바로 잔치를 여는 곳이라고 짐작했다.

 그녀가 꽤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그 돈이 많다던 귀족은 지인이란 지인, 마을 사람들까지 다 불러 잔치를 열었기 때문에 마을 주민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아버지와 귀족은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리자마자 아무도 모르는 그 잔치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귀족을 찾기 시작했다. 의외로 귀족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귀족은 사람들 중에서 제일 많이 꾸민─사실 그녀가 보기에 촌스러웠다─사람이었다. 귀족은 손질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은 공들인 수염을 달고 있었고, 흰색 줄무늬가 있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점잖게 보이려고 했지만 굉장히 졸부 같은 티가 많이 났었다.

 귀족은 그녀를 한 눈에 알아보는 듯하였다. 그는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맞이하고는, 언제 적인지 모를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하는 낌새를 보였다. “오, 안녕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소개해주시면 어떨까한데, 그래 주실래요?” 그녀는 낌새를 눈치 채고는 미리 막으며 말했다.

 그러자 귀족은 입을 닫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 살짝 끌었다. 그가 도착한 곳에는 한 귀부인과 여인들이 여럿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귀족은 귀부인과 요상한 눈길을 보내다 그녀를 여인들에게 소개시켰다.

 “이 아이가 누군지 아시나요? 루퀘르씨의 딸아이랍니다.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그러니까 무도회 방문이 말이죠.” 귀족은 콧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오, 아가. 이 사람은 내 아내란다. 인사하렴.”

 그녀는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하고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부인. 만나 뵙게 되어서 기뻐요. 소문보다 예쁘시네요.” 예쁘단 말은 차마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쁜 건 사실이었다. 어찌됐건 이제 한 무리의 일행 아니던가.

 귀부인은 호들갑스럽게 소리쳤다. “맙소사, 고맙단다. 마침 내 아들이 와있는데, 보지 않을래?” 하고는 그녀가 대답할 새도 없이 목청껏 자신의 아들을 불러댔다. 귀부인의 목소리는 생선가게 아저씨가 홍보할 때만큼 목소리가 컸다.

 그녀는 귀부인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들은 그의 부모님과 달리 총명하게 생겼으며, 못생긴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게다가 제 또래여서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마친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반가워요. 메기 르퀘르에요.” 오랜만에 그녀는 감정을 숨길 수 없어 꽤나 들뜬 목소리였다.

 “저도 반가워요.” 그러나 그는 그녀와 달리 매우 차분하고, 그녀보다 감정을 숨기는데 노련해보여 그녀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조금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귀부인은 여전히 호들갑스럽게 그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며 그녀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해 주었고, 그녀의 아들에게 집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미 그러려고 했다며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제일 먼저 잔치를 여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아늑해 보이는 정원에 그녀를 데리고 왔다. 그는 작은 벤치에 걸터앉으며 말을 꺼냈다.

 “여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요, 르퀘르양.”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용하잖아요. 전 시끌시끌한 게 싫거든요.”
  “정말 좋아요. 저도 집에 이런 정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색한 건지, 조용함을 느끼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침묵을 이어가자 그녀는 불편한 듯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른 곳도 알려줄래요?”
  “어디로 가고 싶어요?”
  “네? 아, 음…, 그러니까……, 아무데나 좋아요. 여기만 알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는 웃고는 일어나서 다시 별장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그를 주인을 쫒아가는 강아지마냥 따라갔다. “사실, 잔치가 열리는 곳. 별장. 그게 다에요…. 커 보여도 별 거 없거든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는 계속 걸어가 집 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집 안은 그의 말대로 조금 작아보였다. 마침내 책들로 가득 찬 곳에 멈췄을 때 그녀는 놀라 한동안 입을 벌리고 멈춰있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잠자코 기다렸다.

 “멋져요…!” 그녀는 이렇게까지 많은 책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눈이 커져있었다. 그러다 이 감탄은 자신이 그들보다 가난하다는 것이라고 오해받게 될까봐─실제로도 그렇지만─서둘러 놀란 입을 다물고 우아하게 둘러보려고 애썼다.

     그런 그녀를 보고 몰래 그는 살짝 미소지었다.
     4,760자










단편이어도 사실상 길게는 약 5편 짧게는 2편 이상으로 잡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조금 길게 될 것 같네요 uu 다음주에 뵈어요!
오늘은 사정상 조금 짧게 했습니다..
뭐 거의 글 연습 겸 상상력 연습 겸 쓰는거에요

아 참 참고로 원하는 키워드같은거 말씀해주시면 다음 단편소설 주제로도 써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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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06 15:52 | 조회 : 890 목록
작가의 말
호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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