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愛憎 애증(2)

천천히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여기가 어딘지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 환경. 어둠으로 뒤덮여 빛조차 들지 않는 곳이라니. 행글라이더를 타고 녀석에게 안겨 어딘가로 가던 중이라는 것을 끝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를 원망했다. 지끈거리는 머리. 자연스럽게 잠든 게 아니라 수면 가스로 기절을 당했던 모양이다. 연신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 진정시키려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움찔거리기만 하는 손. 자신이 하는 생각이 틀렸기를 바라며 손과 다리를 움직였으나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꿈쩍도 못 하게 단단히 고정된 손과 발. 피부에 닿아오는 감촉으로 추측하자면 거친 밧줄 등의 도구가 아니라 부드러운 천을 겹겹이 묶어놓은 것 같았다.

‘대체 그 녀석은 어디로 내뺀 거야. 애초에 나는 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거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물었지만 아무리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도 타당하다고 느껴지는 답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한다고 해도 이렇게 상황을 만든 녀석의 마음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키드 녀석, 눈에 보이기만 해봐. 아예 도둑질도 못 할 상태로 만들어 줄 테니까.”

녀석에 대한 원망 섞인 말을 내뱉기도 잠시 작게 들려오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시각이 차단된 만큼 청각이 예민해져 곤두서 있는 상황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도 잡아낼 수 있었다. 뚜벅이며 걸어오는 구둣발 소리. 분명히 그 녀석이다. 속도를 줄이며 우뚝 멈추어 서는 발소리와 함께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 차리자마자 너무 과격한 소리를 하는 거 아냐, 명탐정 씨?”
“너야말로 갑자기 무슨 짓이야?”
“그래서 말했잖아요, 오늘 밤 훔치는 보석은 우리 명탐정이 될 거라고.”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전시된 보석에는 손끝도 안 대고서 찾아와놓곤 내가 보석이라고?”
“그럼 대놓고 예고장에다 [오늘 밤 제가 훔칠 보석은 빛나는 파란 눈의 명탐정입니다]라고 홍보라도 해?”
“됐고, 일단 이거부터 푸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너.”

자신의 말이 씹혔다는 걸 안 것인지 한숨을 내쉬던 녀석이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이젠 탐정이면서 협박까지 하는 거야?”
“협박이 아니지, 내 몸 내가 자유롭겠다는데 네가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해?”
“무슨 권리냐니 너무 말 섭섭하게 하는 거 아냐? 애초 우리가 마냥 남남인 사이도 아니고 내가 너 좋아하는 것처럼 탐정 씨도 나 좋다고 인정했잖아.”
“그거랑 이건 다르지, 그러니까 얼른 풀어.”

너무하다며 투덜대는 말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당당했고 장난스러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협박하듯이 말하면 풀어주기 싫어지는데, 애초에 지금은 명탐정보다 내가 우위에 서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 아예 안 풀어주는 수가 있어.”
“...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데 그래?”
“굳이 여러 번 말해줘야 이해하는 거야? 이미 말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녀석이 질투라고 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간만에 원래대로 돌아온 몸을 이용해 오사카에 사는 친구 좀 만나고 오는 게 어때서, 노는 데 집중하다 보면 시간 지나는 줄도 모를 수 있는 거고 때론 예고 시간을 넘겨 도착할 수도 있는 건데.

“오사카에서 놀다 온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아니, 놀다가 오는 것 가지고 내가 이러겠어? 노는 건 자유지. 다만 오랜만에 ‘에도가와 코난’이 아닌 고등학생 명탐정의 몸인 ‘쿠도 신이치’로 돌아와 놓곤 나보다 먼저 그 오사카 탐정을 만나러 갔잖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은 상황이면 질투 될걸? 그냥 안일하게 넘기려는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명탐정뿐이라고만 생각되는데.”

그런 이유 하나로 지금 이렇게 사람 데려다가 묶어놓은 거냐고.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짧게 찌푸리자 이마에서부터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이마를 어루만지는 길고 가는 손가락.

“얼굴 이렇게 찌푸리지는 말고, 얼굴 못나지잖아.”
“네가 뭔 상관이야.”
“자꾸 그런 식으로 대꾸할 거야? 섭섭하게.”
“묶은 것부터 풀어주면 곱게 말해줄 의향은 있는데, 어때?”
“어차피 지금은 내가 우위에 있다고 몇 번을 말해줘야 인정할 거야, 너?”
“내가 순순히 인정해줄 사람으로 보여?”

잠깐의 침묵. 그리고 이내 아니라며 한숨을 내뱉는 그.

“이렇게 같은 말로 실랑이할 바에는 그냥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게 더 효과적일 거란 생각이 들어.”
“체험은 무슨, 뭘 하려고 그래?”
“내가 순순히 말해줄 것 같아, 명탐정 씨? 괴도는 항상 비밀스러워야 해.”

걸음을 옮기는 발소리. 달칵, 스위치가 눌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갑작스럽게 퍼지는 밝은 빛에 부셔오는 눈. 밝은 빛에 적응이 안 되어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애써 뜨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위를 살피는 나를 마냥 지켜보고 있던 키드는 이내 잠시만 참으라는 말과 함께 천을 가져와 눈을 가렸다.

“치사한 자식이 시야까지 다 가려버리냐?”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위에 있는 상황이니까 내 마음이지.”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지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려 있다.
누구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행동 다 하면서 장난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답답하게 묶여서 있는지. 현재 상황을 몇 번이고 되뇌어도 용납되지 않는 마음은 연신 그에게 나쁜 놈이라며 투덜거림을 내뱉도록 이끌었다. 물론 그는 그답게 흘려들으며 웃었지만, 그 태도가 말하는 사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알고 보면 육체적 제약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제약을 두는 상황이 아닐까,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현실에 그저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자, 그럼 행글라이더로 날아오면서 나눴던 이야기는 기억하지?”
“무슨 이야기.”
“모르는 척 시치미 떼는 거야, 아니면 기절 때문에 정말 잊어버린 거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가온 그의 손가락이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너도 나 좋다며, 정말로 사랑한다며.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에 따른 행동을 보여줘야지 맞는 게 아니겠어. 명탐정 씨?”
“대체 이 상태로 무슨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괜찮아. 당장은 내가 이끄는 대로만 잘 따라오면 되니까 말이야.”

입술에부터 닿아오던 손가락이 어느샌가 머리 위로 올라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잠시 다물었던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좋아,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원해? 네가 수십 번 말했듯이 현재의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을 가린 천으로 인해 볼 수도 없어. 이런 상황은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그러니까 얼른 네가 말하는 것들을 해치우고 끝내는 게 어때?”
“그거 진심이야? 나중에 후회해도 나는 모른다.”

내가 내뱉은 말이 꽤 의외였던 것인지 흥미롭다는 듯 말하던 그가 ‘뭐, 그렇다면 슬슬 시작해 볼까.’라고 말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꺼내는 듯 연신 덜컥거리며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2분의 시간이 지나서야 멎어 드는 소리. 뭐가 이렇게 많냐며 감탄하면서도 의외로 복잡하다며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뭘 준비하길래 그렇게 중얼거려?”
“이왕 하는 거 신중하게 해야지. 괜히 어설프게 준비했다가 서로 실망하면 어떡해?”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난 절대 기대하고 있는 마음이 없는데 어쩌나.”
“지금 한 말, 분명히 나중에는 고쳐먹을 거라고 확신해.”
“무슨 자신으로?”
“지금부터 시작해보면 알겠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명탐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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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11 12:45 | 조회 : 3,421 목록
작가의 말
백 윤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위해 나머지는 3편에서 진행됩니다(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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